<<시절 인연>>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에 첫눈이 내렸다.
거추장스러운 잎들을 훨훨 떨쳐 버리고 알몸을 드러낸
나무와 숲에 겨울옷을 입혀 주려고 눈이 내렸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달력에 의하면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인 11월. 그 11월에 들어서면 나무들은 여름과 가
을철에 걸쳤던 옷을 미련 없이 훨훨 벗어 버린다. 나무
들이 모여서 이룬 숲은 입동立冬 무렵이면 겨울맞이 채비
를 다 끝내고, 빈 가지에 내려앉을 눈의 자리를 마련해 둔다.
누가 시키거나 참견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물러설
줄 아는 이 오묘한 질서. 이게 바로 어김없는 자연의 조화
造化다. 대립하거나 어긋남이 없이 서로 균형을 잘 이루
는 우주의 조화調和다.
첫눈이 내리던 날 숲은 잠잠히 흰옷 입은 길손을 맞아들
였다. 내 오두막 난로의 굴뚝도 연기를 피워 올리면서 겨
울 친구를 반갑게 맞이했다.
사람들은 첫사랑을 못 잊어한다. 때묻지 않아 그만큼 순
수한 마음으로 닦여진 아름다운 인정이요, 관계이기 때
문이다. 그것은 초승달 같은 애틋함과 저녁 종소리 같은
여운을 지닌다. 어떤 관계는 초이틀 달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이는 초사흘 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초나흘이나
초닷새에 이르면 그만큼 애틋함과 풋풋함은 덜하고 서서
히 자기 고집을 드러내어 무뎌지기 시작한다.
계절만 하더라도 처음 맞이할 때가 가장 신선하다. 초봄
과 초여름과 초가을, 그리고 초겨울은 신선한 계절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한여름이나 한겨울, 봄과 가을이 무
르녹게 되면 처음 그 산뜻했던 느낌과 분위기는 소멸되고 만다.
화엄경에, ‘초발심시 변성정각初發心時 便成正覺’이란 말이
있다. 최초에 한 마음을 냈을 때 곧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
다시 말하면. 맨 처음 먹은 그 한 생각이 마침내 깨달
음을 이룬다는 뜻이다.
한 송이 꽃이 피어나면 뒤를 이어 가지마다 꽃들이 피어
난다는 소식消息이다. 꽃이 필 때 매화가 됐건 진달래가
됐건 일시에 다 피어나는 것은 아니다. 맨 처음 꽃망울을
터뜨리고 한 송이가 피어나면 이 가지 저 가지에서 수런
수런 잇따라 피어난다.
첫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초지일관初志一貫, 처음 세운
뜻을 굽히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그 뜻을 이룰 수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대로 전할 수밖에 없다. 내 자신
에게도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해당될 말이기 때문이다.
“중놈 ♪♬♫들 또 ♪♬♫이야!”
얼마 전 총무원장 선출을 두고 조계사에서 일부 승려들
이 난동을 부린 장면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바로 그 무렵 서울 강남에 볼일이 있어 안국역
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양재 쪽으로 가는데, 내 옆자
리에서 신문을 펼쳐 보던 40대 남자가 자기 친구에게 신
문을 건네주면서 내뱉듯이 한 소리다.
조계종 승려들의 종권을 둘러싼 난동은 이번에 처음 있
는 일이 아니라 잊어버릴 만하면 주기적으로 발작을 일
으키는 ♪♬♫병처럼 자주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사실은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부끄러운 작태다.
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조계사 대웅전 입구에서 기자를
만난 74세의 박순주 할머니는 이번 사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잿밥에만 눈이 어두운 스님들은 전체 스님들 중에서 한
줌밖에 안 되거든. 고것들을 어떻게든 쪼까내야 할 텐데…….”
그 할머니의 지적대로 무슨 명분에서건 잿밥(종권)에 눈
독을 들인 승려들은 소수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온 강물
을 흐려 놓는 그 소수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한마디
로 출가 수행자로서 일상적인 정진이 결여된 출가 정신
의 부재자들이다.
절에 들어와 머리를 깎고 먹물옷은 걸
쳤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운 바도 없고 선원
에서 안정된 정진의 수행도 없이 지극히 세속적인 업만
을 익혀 왔을 뿐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그들의 용모와 언
어와 동작에 그대로 나타난다.
누구나 처음 입산 출가할 때는 비장한 결심으로 세속의
집을 등지고 절에 들어온다.
그러나 수도 생활이란 겉으로
보면 한가하고 편한 일 같지만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
는 싸움에서 이겨 내야 하는 가시밭길이다. 세속적인 자
아와 출세간적인 자아와의 갈등에서 단호히 떨치고 일어
나야 한다. 누가 낱낱이 참견하거나 간섭하지 않기 때문
에 그만큼 타락의 함정이 여기저기에 입을 벌리고 있다.
긴말할 것 없이, 세속의 집을 등지고 나올 때의 그 첫 마
음을 잘 지키고 가꾸는 피나는 정진이 따르지 않으면, 그
누가 됐건 ‘잿밥에만 눈이 어두운 한 줌의 중’으로 전락하고 만다.
맨 처음 먹은 그 한 생각最初一念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
행자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다. 새롭게 태어
남이 없으면 범속한 일상사에 물들어 마침내 부패하고만다.
이건 수행자만이 아니다. 스승과 제자, 아내와 남
편, 친구 사이도 처음 만났을 때의 간절하고 살뜰했던 그
첫마음을 지키고 가꾸면서 항상 새로워져야 한다. 이것
은 거저 되는 일이 아니고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이 받쳐
주어야 하는 인생의 길이다.
첫마음을 잊지 말라. 그 마음을 잘 지키고 가꾸라.
1998년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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