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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칸 홀린 인도 독립영화… 뭄바이 사는 여자들

인도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발리우드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새다. 작품은 대도시 뭄바이에 사는 세 여인의 삶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적으로 묘사하는데, 특유의 과장된 춤사위나 노래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비현실적인 로맨스나 초현실적인 액션·판타지와 같은 극적인 요소도 완전히 배제했다. 도리어 관조적이고 초연한 태도로 해외의 낯선 관객이 자연스럽게 인도 주인공들의 삶에 다가가도록 이끈다.
세 여인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와 뭄바이의 한 병원에 취직했다. 독일로 일하러 간 뒤 돌연 연락을 끊어버린 남편을 묵묵히 기다리는 간호사 프라바(카니 쿠스루티), 같은 힌두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슬람교 연인을 꽁꽁 숨겨야 하는 동료 간호사 아누(디브야 프라바), 20년 넘게 산 집에서 재개발을 이유로 쫓겨날 예정인 요리사 파르바티(차야 카담)는 매일 아침 생존을 위해 일터로 향하고, 그곳에서 자연히 서로의 사정에 귀 기울이게 된다.
제약은 많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그다지 없는 삶, 그것이 주어진 운명이다. 프라바는 부모님의 뜻대로 누군지도 모를 남자와 결혼했고 홀로 남겨졌다. 무책임한 가족과 남편을 원망할 법도 하지만 새로운 연애나 재혼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인도의 억압적인 여성 인권 문제를 상징하는 프라바의 사연은 그가 일하는 산부인과를 찾아오는 여인들의 평범한 일상과도 맞닿아 있다. 20대 초반에 아이를 셋씩이나 낳고도 피임을 당당히 거부하는 남편 때문에 얼굴이 수척해진 한 여인에게 동료 간호사 아누는 피임약을 건넨다.

두 간호사보다 나이가 많은 중년의 요리사 파르바티의 사정은 좀 더 절박한 데가 있다. 그는 곧 살던 집에서 쫓겨나 일할 곳 없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20년 넘게 지내온 터전이 인도 부유층의 전유물인 고층 빌딩으로 재개발될 예정이라서다. 그것은 젊은 시절 기반 없이 대도시 뭄바이로 흘러들어온 경제적 취약계층 대부분이 마주하게 되는 씁쓸한 최종장일 것이다. 극심한 빈부격차라는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주목할 만한 건, 그럼에도 그 모든 인물의 사연을 애정어린 온도로 다뤄내는 감독의 시선이다. 짧은 여행길에 오른 세 여인이 나누는 무언의 우정이 작품의 연대 정서를 분명히 하는 가운데, 영화는 이들 각각의 갈등을 섣불리 폭발시키거나 불쑥 희망적인 결론으로 이야기를 맺어버리는 손쉬운 접근 대신 마지막까지 무던한 태도를 유지하는 쪽을 택한다. 이 단정함은 고단하고 초라한 현실 안에서도 부단히 살아내려 하는 이들의 덤덤한 의지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사려 깊다. 이 작품이 세계 영화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일 듯싶다.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