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용중인 도장
프랑스에 마르셍 뒤샹이라는 초현실주의 화가가 살았답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등 입체파에서 영향받은 시간성을 나타내는 그림등을 그리다가
1차대전이 발발해서 친구화가들과 함께 미국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당시 미국은 그야말로 고향에서 풍경이나 그리는 화가들로 득시글 했던 상황 하에서
1917년 제1회 앙데팡당전(독립미술가협회전)을 열었는데 여기에 마르셀 뒤샹은
기존의 소변기에 r. mutt라는 소변기 제작자의 이름으로 서명하고 '샘'으로 제목을 지은 뒤 출품하자
운영위원들은 아연실색하며 작품 전시를 거절합니다. 당시 6달러만 내면 누구라도 출품할 수 있었음에도 말이죠.
이 소변기는 나중에 '레디메이드(ready made)"라는 오브제의 한 형식으로 정착하게 되지만
당시의 미국으로서는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변기를 거꾸로 뒤집어 놓고 샘이라고 했다는 것은 미술을 그저 고전적 관점에서의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을 전환시키는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변기가 샘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용품을 미술이라는 문맥에 집어 넣어 상식을 꺠어버리고 발상을 전환시키는
하나의 방식으로 사용했다고나 할까요. 이런 방법은 과격하게 또는 순하게 후대 미술가들이
자주 써먹는 수법으로 남게 됩니다. 앞서 백남준도 소개해 드렸지만 이 할배도 순한 편에 속합니다.
먼저 계획을 세우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거짓말 하지 않고 실행한다는게 뒤샹에게 물려받은
개념미술의 기본 정신인데 여기에 신체미술가들은 자신의 신체를 직접 훼손하거나 심지어 자살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잠시 이야기가 옆길로 샜는데...
그런데 이 양반, 한술 더 떠서 미술을 대하는 시각이 독특하다 못해
기존 미술은 '망막의 속임수'라고 대놓고 기존 미술계를 조롱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무엇을 본다는 것은 빛이 대상의 전자를 때려 발광하는 것을
시신경이 포착하고 뇌가 이를 해석하는 과정입니다.
뇌가 해석하는 과정에서 집단의식, 무의식 개인 의식 무의식등이 총 망라되기 떄문에 그야말로
최초에 망막에 비친 빛은 개인이 해석한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우리는 같은 사과를 보고 있어도
다 다르게 보고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미술작품도 말할게 없겠죠.
여기에다가 미술 자체의 문제도 있는데
인상주의에 점묘법이라고 있습니다. 이 기법은 채도가 높은 다른 색상의 두가지 색을 병치시켜 약간 띄워 놓고 점을 찍으면
우리 시신경은 그 중간을 두색의 혼합으로 매꿔버리는 것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좀 거리를 띄워 놓고 보면 생생한 색의 향연이 펼쳐지죠.
이런 사기캐가 점묘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회화 전반에 곳곳에 숨어서 숨쉬고 있고 3차원 공간을 2차원에 표현하는 것 조차도
엄밀히 말하자면 사기라는 이야기죠.
이런 그의 엄밀성 때문에 그의 작품은 후기로 갈수록 점점 이해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런데 가만보면 눈에 보이는 것에 혼란스러워 하지말고 내 머리속에서 이것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생각해보면 신기하게 또 이해가 됩니다. 저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 영감탱이가 나를 놀리고 있군.
그래서 그런지, 늙어서는 대중을 놀리거나 현혹시키는게 싫어서 인지 체스만 두고 지냈답니다.
미술에 대한 엄정한 태도와 형식주의는 나중에 개념미술로,
또 미국의 쏟아지는 상품들과 만나 팝아트로 승계되고, 추상표현주의의 평면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현재는 미국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는 것이 이 땡깡쟁이 할배의 위상 입니다.
마르셸 뒤샹에 대해선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단 하나의 물음에서 출발합니다.
"미(美)가 존재하는 곳에는 모두가 예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가 처음으로 개념 예술과 관련된 언급('이제 회화는 망했어. 누가 저 프로펠러보다 더 멋진 걸 만들 수 있겠어?')을 했다고 알려진 1912년 파리에어쇼 일화는 이 물음을 그대로 대변해줍니다.
뒤돌아보면 단순해보이는 질문이지만, 하나의 패러다임이 확고한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메타적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다각적인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뒤샹이 촉매가 되어 만들어진 모더니즘의 폭발이 얼마나 크나큰 사건이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대장님의 질문들이 사실 현대미술을 지배하고 있는 중요한 개념들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해 제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예술작품으로 인정을 받는 다는 것은 예술제도 안으로의 편입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미술 뿐 아니라 당시의 일반적 상식과 관습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통과 의례이기 때문에 작품으로서의 인정은 시대와 멀찍이 떨어져 상당히 늦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의 본질 중 하나는 기성의 것을 깨부수고 새로운 시각과 세계를 여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새로운 패러다임, 혹은 에피스테메를 여타의 제학문보다 더 빨리 성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과학과 같이수학적 계산이나 실험으로 증명되지 않기 때문에 고흐는 외롭게 생을 마감하고 시간이 흐른 후에야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 예술가의 새로운 선택이 다가올 시대가 선택하는 가치들과 부합하는가에 따라 그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최전선에 서느냐 혹은 무명으로 사라지고 마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왜 미쳤다고들 그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떨어져도 마음 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보아야 아니 하느냐. 여남은 개쯤 써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2천 점에서 30 점을 고르는 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머리를 떡 꺼내어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 꼬랑지커녕 쥐 꼬랑지도 못 달고 그만두니 서운하다."
- 이상, 독자들의 항의에 연재가 중단된 '오감도' 연작에 대해 남긴 작가의 말에서
그래서 저는 뒤샹과 이상을 단순히 미술가와 문학가로 규정짓기보다, "모더니스트"라고 호칭하는 것을 좀 더 즐겨합니다.
크리스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시대에서 mordern의 개념은 무엇인가 하고 자문해 보았습니다. 모던은 단지 현재의 시대를 규정짓는 임시적 개념 인가 또는. 중세시대 사회에도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면 모던이란 용어를 적용시킬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이죠.
포스트모던의 시대라고도 합니다만, 이상과 뒤샹이 가졌던 당시로선 메타적 질문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메타적인가라는 의문도 갖게 됩니다. 플라스틱 입자가 지층을 이룬 것을 보고 지질학자들은 인간세라는 지질학적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 할만큼 문화적 역사적으로도 뚜렷한 층갈림이 현재에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판명이 되고 명명 되겠지만, 100년전의 시대에 비해 급변하는 사회적, 문화적, 학문적 발견과 성취들에 대해 정의할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예술사조라는 것은 시대를 나누는 이름을 명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더니즘"이라 일컫는 시대가 있었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알맞지 않나 싶은 생각입니다.
단지 예술사조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게되는 것은, 기존에 있던 사조에서 발전의 한계점이나 모순점이 발견되었다면 그것을 보완하거나 새롭게 바꾸기 위하여 노력한 결과물인 것이죠.
중요한 것은 그 당시 그러한 운동을 이끌었던 인물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행동했는가?'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컨데 뒤샹의 생각은 모더니즘에서 다다이즘으로 발현되었고,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해체주의로써 이어진 것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하나의 예술사조는 현재 혹은 과거의 것이지만, 누군가의 생각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갖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약에 이상과 뒤샹이 현시대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도, 그들은 그들이 가졌던 전위적인 생각으로 현 시대의 모습을 또 새롭게 바라보았을 것이라 생각해보아요 ㅎㅎ
모더니즘이란 예술뿐 아니라 문화, 학문, 정치 영역에 걸쳐진 폭넓은 사고의 총체를 이르는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술사조적으로 이해한다면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선언(1927), 다다이즘(1916)도 초기 모더니즘의 한 경향이고 뒤샹도 동시대를 같이 살았죠. 서로의 영향이 인과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기 보다 하나의 시대적 패러다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현대 물리학의 중요한 이정표가 된 솔베이 회의(1911)도 이 즈음인걸 생각해 보면 고전주의적 세계와 결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형성의 시기에 같이 등장한 인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뒤샹은 따로 그룹을 이루어 활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으며 후에 그린버그와 같은 미국 형식주의의 대표적인 비평가들이 미국에서 나타난 새로운 경향을 줄 세우려다보니 뒤샹이 첫머리를 차지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님의 말씀처럼 중요한것은 패러다임의 선두주자들이 어떤 생각으로 세상과 자신들의 전문분야를 바라보았는가 하는 것일거고, 일상을 살아가는 저로서는 매너리즘에 빠져 매일을 보내는 생활에서 벗어나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보게 해주는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이 이들을 읽는 재미인 것 같습니다.
사조라는 것이 정해지고 그 아래에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이 만들었던 공통된 사고방식들이 하나의 사조로서 정해지는 것이니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시대를 관통하는 본질을 생각해보기 위해선 가장 끝단의 사람의 생각에 대해 생각해보아야한다는 말씀을 드려보았습니다.
사람은 사람들 사이의 교류에서 무언가의 영감을 얻을 테고, 그것을 발전시켜나갈테니 말이에요.
그렇기에 저는 그 모든 걸 인과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많이 즐겨해봅니다 ㅎㅎ
인과관계가 먼저냐 혹은 패러다임이 먼저냐는 닭과 달걀의 관계와 같습니다만, 엘리트주의에 늘 반감을 가지는 저로서는 패러다임론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크리스님과 같은 생각을 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쇄적인 작용에는 항상 인과관계가 있기 마련이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제목 | 조회 수 | 날짜 | 글쓴이 |
---|---|---|---|
Hot 이거 무조건 사기겠죠? +9 | 123 | 24.10.2223:19 | lesmi |
Hot 2찍 중고 사기 민사로 갑니다. +5 | 47 | 24.10.2412:08 | Mactopia |
Hot 월요일이 사라졌으면... +5 | 55 | 24.10.2218:06 | Mactopia |
9 | 24.10.2420:02 | lesmi | |
17 | 24.10.2418:20 | Mactopia | |
19 | 24.10.2416:38 | 아이브경 | |
12 | 24.10.2416:38 | 아이브경 | |
17 | 24.10.2416:37 | 아이브경 | |
14 | 24.10.2416:37 | 아이브경 | |
12 | 24.10.2416:37 | 아이브경 | |
19 | 24.10.2416:37 | 아이브경 | |
12 | 24.10.2416:37 | 아이브경 | |
10 | 24.10.2416:37 | 아이브경 | |
4 | 24.10.2416:37 | 아이브경 | |
10 | 24.10.2416:37 | 아이브경 | |
11 | 24.10.2416:37 | 아이브경 | |
47 | 24.10.2412:08 | Mactopia | |
62 | 24.10.2322:22 | 잠퉁이 | |
53 | 24.10.2317:43 | Mactopia | |
123 | 24.10.2223:19 | lesmi | |
80 | 24.10.2222:11 | Mactopia | |
71 | 24.10.2221:10 | Mactopia | |
55 | 24.10.2218:06 | Mactopia | |
53 | 24.10.2217:12 | 잠퉁이 | |
39 | 24.10.2209:53 | 아이브경 | |
56 | 24.10.2209:53 | 아이브경 | |
58 | 24.10.2209:53 | 아이브경 | |
54 | 24.10.2209:53 | 아이브경 | |
46 | 24.10.2119:31 | ledassy12 | |
85 | 24.10.2108:13 | 아이브경 | |
64 | 24.10.2108:13 | 아이브경 | |
49 | 24.10.2108:13 | 아이브경 | |
63 | 24.10.2108:13 | 아이브경 | |
145 | 24.10.2108:13 | 아이브경 | |
51 | 24.10.2108:13 | 아이브경 | |
49 | 24.10.2108:13 | 아이브경 | |
46 | 24.10.2108:13 | 아이브경 | |
32 | 24.10.2108:13 | 아이브경 | |
43 | 24.10.2108:13 | 아이브경 | |
21 | 24.10.2108:13 | 아이브경 | |
35 | 24.10.2014:31 | 복스렌치 | |
110 | 24.10.1914:35 | 복스렌치 | |
65 | 24.10.1914:32 | 복스렌치 | |
41 | 24.10.1914:31 | 복스렌치 | |
115 | 24.10.1815:01 | bluesaza | |
84 | 24.10.1810:24 | 아이브경 | |
101 | 24.10.1711:40 | Mactopia | |
87 | 24.10.1710:52 | 아이브경 | |
119 | 24.10.1617:54 | 코끼리코 | |
132 | 24.10.1610:47 | 아이브경 | |
110 | 24.10.1522:56 | Mactopia | |
45 | 24.10.1521:33 | 파란하느을 | |
72 | 24.10.1517:57 | Mactopia | |
105 | 24.10.1511:18 | 아이브경 | |
76 | 24.10.1511:18 | 아이브경 | |
65 | 24.10.1511:18 | 아이브경 | |
65 | 24.10.1511:18 | 아이브경 | |
61 | 24.10.1511:18 | 아이브경 | |
86 | 24.10.1414:51 | Mactopia | |
116 | 24.10.1408:43 | 아이브경 | |
134 | 24.10.1217:08 | 늘심심 | |
68 | 24.10.1213:48 | 복스렌치 | |
85 | 24.10.1213:45 | 복스렌치 | |
144 | 24.10.1122:34 | Mactopia | |
131 | 24.10.1114:21 | Mactopia | |
114 | 24.10.1114:11 | Mactopia | |
97 | 24.10.1109:49 | 아이브경 | |
70 | 24.10.1010:57 | 아이브경 | |
37 | 24.10.1010:41 | PN | |
46 | 24.10.0913:05 | 복스렌치 | |
175 | 24.10.0910:34 | bluesaza | |
147 | 24.10.0817:58 | 웃음사냥 | |
224 | 24.10.0812:38 | bluesaza | |
82 | 24.10.0809:20 | 아이브경 | |
67 | 24.10.0809:20 | 아이브경 | |
94 | 24.10.0809:20 | 아이브경 | |
112 | 24.10.0809:20 | 아이브경 | |
86 | 24.10.0809:20 | 아이브경 | |
67 | 24.10.0809:20 | 아이브경 | |
44 | 24.10.0809:20 | 아이브경 | |
300 | 24.10.0723:18 | Steer | |
74 | 24.10.0711:24 | 아이브경 | |
74 | 24.10.0711:24 | 아이브경 |
라는 질문을 두고 보면 저분은 위상이 높을만 하다고 생각 드네요. 제 기준 샘이라는 저 변기의 곡선도 좋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