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검사들이 유익했던 수사지휘례를 집중 거론하며
검찰권 사수를 위한 방어논리를 활용하고 있는데,
벗님들의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부연 설명해 드립니다.
검찰의 수사지휘는
그 내용이 적정하고 유익한지 여부를 기준으로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듯합니다.
1. 유익한 수사지휘
예전에 어떤 변사사건을 담당하며
경찰과 유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검 지휘하여
타살임을 밝혀낸 적이 있습니다.
부검 결과, 변사자 목이 졸린 골절상이 확인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억울한 죽음을 내가 밝혔구나... 싶어
어찌나 보람차던지요.
검사로서 밥값을 한 것이라
유익한 수사지휘라 할 수 있습니다.
2. 무익한 수사지휘
“귀견대로 송치할 것을 지휘합니다”
“귀견대로 종결할 것을 지휘합니다”
검사과 경찰 간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에서의 지휘문구인데요.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오기 전,
또는 타살 혐의점이 없음을 이유로 변사 사건 종결할 때
점검한다는 점에서 유익하고 마땅한 수사지휘로 분류하는 검사들이 있을 수 있지만,
경찰은 유익으로 분류하지 않을 테고,
지휘 내용이 사실상 없으니 무익하다 해도 할 말이 없지요.
3. 유해한 수사지휘
검찰 내부망에 이미 고백하였고,
제 담벼락에서도 언급하였던 사건.
오래전, 유력가 자제의 음주무면허운전 사건을 지휘하며
‘주차할 곳을 찾아 도로를 운전한 사람에게
주차할 의사가 있을 뿐, 운전의 고의는 없으므로
혐의없음 의견으로 송치할 것’이라고 지휘하라는
황당한 지시를 받고
그 상사가 떠날 때까지 사건을 송치받지 않으려고
확인할 필요 없는 사소하고 지엽적인 것들까지 다 확인하라고
수사지휘로 경찰을 몇 달간 괴롭힌 적이 있습니다.
상사가 떠나는 날.
전출식 행사를 마친 후 검사실로 돌아와
“귀견대로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송치할 것을 지휘합니다”라고 지휘문구를 작성하며
잘 버텼다고 뿌듯해했었지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저는 비겁했고 치졸했습니다.
저는 수사지휘권을 남용하여
다른 사건 수사에 투입되었어야 할
귀한 경찰인력을 낭비시켰습니다.
검찰은 검찰개혁 논의 때마다 늘 해오던 대로
유익했던 사례를 내세워 수사지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유익한 수사지휘라 해도
현행 법령과 제도가
검사들에게 요구하는 마땅한 역할을 한 것일 뿐이지요.
유해한 수사지휘 사례를 애써 무시하고,
국가기관인 경찰을 폄훼하는
반성 없고 오만한 검찰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동료들을 비롯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저에게 의견을 묻고 있는데,
저는 수사지휘권을 남용한 원죄가 있어 말할 자격이 없기도 하고,
검찰권 오남용에 순응하거나 침묵한 검찰 구성원으로서,
검찰을 해체하겠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처지라 생각하며
반성하고 성찰하는 자세로
지난주 전직 검찰총장과 대검 차장검사를 상대로 한 재정신청을 한데,
이어 법원에 제출할 법리검토 의견서 준비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검찰 구성원으로서 할 말이 없습니다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금번 국회에서 지혜롭고 담대하게
검찰개혁 법안을 논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