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용중인 도장
그보다 1시간 전, 서울 용산경찰서 직원 여럿에 전활 걸었다. 핼러윈이 낀 주말, 더욱이 토요일이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가 붐빌 게 불 보듯 뻔했다. 얼마나 사람이 몰릴 걸로 보는지 물었다. "10만 명은 넘을 거 같다"고 했다. 이날 경찰 예측 이태원 유동인구가 '10만 명 이상'인 건 새로운 내용도 아니었다. 핼러윈 기간 매일 10만 명이 모일 거라고 용산경찰서는 이틀 전인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냈다.
'이태원 핼러윈, 시민 안전과 질서 확립에 총력'이라는 제목의 자료에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핼러윈으로 클럽 등 영업제한이 해제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축제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적혔다. "핼러윈 주말 3일간 112·형사·여성청소년·교통 등 관련 기능에 추가로 경찰기동대를 지원 받아 총 200여명 이상을 이태원 현장에 배치해 핼러윈 시민 안전과 질서유지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란 내용도 담겼다.
'그럼 오늘 밤사이엔 몇 명 정도 모일 걸로 보는지'로 질문을 바꿔 물었다. "10만 명은 넘을 것"이란 같은 답이 돌아왔다. 어떤 조치가 예정돼 있는지 묻자 한 경찰관은 "보도자료가 나간 대로 200명 이상 투입할듯하다"면서 "형사과 등에서 일대 클럽을 중심으로 마약 등 범죄단속을 할 것"이라고 했다.
"예전부터 준비해온 불시 마약 단속이라 아직 이 부분은 보도가 나가면 안 된다"고도 일렀다. 용산구청도 종합상황실까지 차려 긴급 대응을 예고했다. '그 좁은 동네에 10만 명이 몰린다고?' 의구심이 들었다. '진즉 10만 명이 몰릴 걸 예상했다면 어련히 잘 대비했겠지'라고, 아마도 평생 후회로 남을 생각을 그땐 했다. 그날 밤 사고 소식을 듣고 기자가 달려가 만난 현장은 표현이 죄스러울 정도였다. 사고 발생 골목에서 한참 떨어진 도로부터 응급차로 차 있었다. 밤 11시가 넘었지만 아직 정확한 사고 개요가 알려지지 않은 때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해줄 정신이 있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인근 술집에서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 나와 심폐소생술을 도왔다는 20대 임모 씨는 "최선을 다했는데 살리지 못 했다"면서 손을 떨었다. 그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는데, 왜 통제가 없던 건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울먹였다.
9쪽 분량 계획에 언급 '0건' SBS는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을 대비해 서울경찰청 경비과가 작성한 '경력운용 계획' 문건을 입수했다. 붙임자료를 포함해 9쪽 분량이다. 서울 지역에 돌발 상황이 예상되거나 통제가 필요한 곳에 배치할 경찰인력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어디에 배치할지 상세히 정리돼 있다. 자료에 따르면, 당일 운용 가능 인력은 총 81개 부대였다. 혼잡 상황을 정리하고 충돌에 대비해 전문적으로 훈련 받은 경찰관 직원기동대가 69개, 의무경찰중대가 12개였다. 1개 기동대 또는 중대가 보통 60명으로 구성되니까 최소 4,800명 정도가 있던 셈이다.
서울경찰청은 이 인력을 △집회 등 '금일 주요상황'과 △거점근무 △외국공관 등 주요시설로 나눠 투입했다. 81개 부대를 쪼개서 다시 부대를 만드는 식으로 '주요상황'에는 70개 부대를 집중 배치했다. 이 '주요상황'에는 당일 있었던 양대 노총과 진보, 보수단체의 집회 등 서울 시내에서 있었던 총 21개의 집회가 열거됐다. 이 가운데 20명 안팎이 모일 걸로 신고 됐거나 예상하는 집회도 4개나 됐다. 용산경찰서가 10만 명 넘게 모일 걸로 일찍이 내다본 이태원 핼러윈 상황과 관련해선 단어 하나 적히지 않았다.
"생각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용산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특히 당일 저녁 대통령실 인근까지 행진하는 두 대규모 집회 상황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어 이태원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실제 자료에는 약 2만 5천 명이 저녁 6시까지 3.5km 거리를 행진해 지하철6호선 삼각지역 인근에서 해산하고, 1만3천 명이 3.2km를 행진해 저녁 8시쯤 삼각지역에서 해산하는 두 집회가 '주요상황'의 1, 2번째로 담겼다. 수도권의 한 기동대장은 "행진 뒤 해산까지 챙기고 밤 9시쯤 기동대의 모든 업무가 종료됐으니, 지휘부가 생각만 있었다면 이태원에 얼마든지 투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삼각지역과 참사가 벌어진 이태원 골목은 1.5km 떨어져 있다.
광화문과 용산·여의도와 서초 등 4개 거점근무 지역에도 14개 부대가 동원됐다. 이태원도 용산구에 속하지만, 핼러윈 파티가 한창일 야간에는 1개 기동대만 용산구에 평상시처럼 배치됐다. 이마저도 이태원 현장에 배치된 게 아니었다. 미대사관과 대사관저 등 주요시설에도 13개 부대가 배치됐다. 문건이 9쪽 분량인데, '이태원' 또는 '핼러윈'이 누락된 건 '안중에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단 평가다. 서울의 한 일선경찰서 경비과 간부를 지낸 한 경찰관은 "상식적으로 대규모 행사가 예정돼 있으면 '혼잡경비'라고 해서 경비대책을 작성한다"면서 "그걸 서울경찰청 경비과로 보고하고,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경력을 붙여주는 식인데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 서울 시내에서 기동대를 이끌었던 경찰관도 "근무 시 무전 등에서 일절 이태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면서 "그날 이태원엔 경비경찰은 동원되지 않고 마약과 성범죄를 단속하는 경찰관만 배치됐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인구가 그렇게 모인다면 범죄단속 경찰관도 있어야 하고 혼잡상황을 정리하는 경찰도 따로 배치하는 게 일반적"이라면서 "경비경찰이 모자라면 지역경찰이 붙지만 대규모 밀집이 예상될 때는 보통 그렇게 안 한다"고 꼬집었다.
그날 이태원에는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지역경찰 32명, 형사 등 수사경찰 50명, 교통경찰 26명 등 총 137명이 투입됐다. 성범죄와 마약 단속 등을 위해 사복차림인 이들이 많았고, 정복 차림을 한 건 58명에 불과했다. 사복을 입은 경찰관들은 질서를 유지하고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거보단 범죄현장을 급습하거나 적발하는 역할을 맡는다. 방호장비를 착용한 채, 충돌이 생기면 막아서고 호루라기를 불고 경찰봉을 휘두르며 질서를 유지하는 기동대나 의무경찰은 현장에 없었다.
'말장난' 같은 책임 회피
이번 참사의 책임이 경찰에만 있단 건 아니다. 다만 '말장난'같은 설명에 보태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행정안전부와 경찰의 반복되는 해명은 유감스럽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다음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회의에서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면서 "경찰,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지는 재난에 대비하고 시민의 안전을 관리할 책무를 져버렸단 비판이 쏟아졌다. 도심 한복판에서 150명 넘는 희생자가 생겼는데 막을 수 없었던 사고라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질타도 이어졌다.
이 장관은 뭇매를 맞은 다음날에도 합동분향소를 들렀다가 "축제 참가자가 8만~10만 명에서 이번에는 13만 명 정도로 30% 늘었는데, 경찰 인력도 130여 명으로 40%정도 증원됐다"고 말했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마약 단속을 하려 사복을 입고 음지를 찾아다닌 경찰관들과 불법촬영에 대비해 건물 내 여자화장실 칸을 수색하던 경찰관들이 어느새 질서 유지 전담인력처럼 둔갑한 것이다. 당장 지난해 범죄단속 경찰관 85명에 방역대책의 일환이었지만 3개 기동대원 180명 등 총 약 265명을 투입한 전력 등 불리한 맥락은 감춘 것이기도 하다. 31년 만에 경찰국을 행안부 밑으로 들여 경찰 지휘 기능을 되살렸고, 총책임자가 된 장관이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비판 받는 건 국민에겐 비극이고 유가족과 피해자에겐 상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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