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용중인 도장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 마녀가 나타났다(합창)/ 부자들이 좋은 빵을 전부 사버린 걸/ 알게 된 사람들이 막대기와 갈퀴를 들고 성문을 두드린다/ 폭도가 나타났다(합창)/ 배고픈 사람들은 들판의 콩을 주워 다 먹어치우고/ 부자들의 곡물 창고를 습격했다/ 늑대가 나타났다(합창)/ 일하고 걱정하고 노동하고 슬피 울며 마음 깊이 웃지 못하는/ 예의 바른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이단이 나타났다(합창)
인디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 이랑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 가사다. 지난 10월 제 43회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식에서 부를 예정이었던 이 노래는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라며 미래지향적이고 밝은 느낌의 노래로 교체하라는 행안부의 지시로 오히려 많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기념식 연출총감독과 가수는 사전검열이라며 반발했고 결국 교체되었다. 이 노래는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3월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한 바 있다.
때로 한 컷의 만평, 한 곡의 노래가 오롯이 시대정신을 반영하기도 한다. 고등학생의 풍자그림 ‘윤석열차’ 금상 수상에 대한 문광부의 엄중 경고와 궤를 같이하는 이번 조치는 예술을 대하는 윤정부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순행적 인과관계는 아닐지라도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를 소지가 있는 일은 ‘알아서’ 조율하는 시그널이 되기도 했다. 앞서 국정원은 신영복 교수의 어깨동무체가 새겨진 원훈석을 교체했고, 강릉 허균 · 허난설헌 기념관은 현판을, 경기교육청은 교육감 직인을 교체했다. 강원교육청도 속초 진로교육원의 표지석을 교체할 방침이라고 한다. 국가기관과 지방정부는 10년이 넘게 멀쩡히 써온 글씨에 색깔을 덧씌우고 중고생 촛불집회를 개최한 단체가 운영하는 중고생 인터넷 신문에 1천만 원이 넘는 과태료를 부과했다.
언론이 살아 있는 권력에 질문하고 취재 보도하는 것은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의혹이 포착되었을 때 정치인을 쫓아다니는 것이 스토킹이라면 도대체 탐사취재는 어떤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인가. 정상적인 취재활동을 범죄시하고 기소하는 것은 언론을 통제하려는 겁박이자 명백한 권력 남용이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취재 보도한 인터넷 언론을 상대로 의혹 당사자인 권력자들이 직접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보여줘야 한다며 가이드를 제시하고 ‘정치깡패집단’이라 매도하는 것이야말로 깡패국가를 자처하는 것이다. 그뿐인가. ‘바이든은 쪽팔려서’라고 들리는 대로 보도했다고 공영방송인 MBC에 보복성 조치를 가하고 특정 언론인이 눈엣가시라 하여 TBS의 돈줄을 끊고 수백 명의 일자리를 날리며 심지어 국정조사에서 의혹을 제기했다 하여 국회의원을 고발한다. 검찰적 사고에 근거한 무단통치이자 사상초유의 헌병검찰국가다.
이는 민간에도 영향을 미쳐 이태원 추모스티커나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내용의 시민단체 홍보물을 인쇄업체들은 ‘찝찝하다’는 이유로 제작 거부한다. 이른바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말과 행동을 자기 검열하는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가 작동한 것이다. 관료든 시민이든 알아서 기고 알아서 윗분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자기보호하게 만드는 가스라이팅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녕 그게 통할까. 그들은 “언론자유라는 우리의 사명을 흔들려고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장으로서 굳건한 방파제가 되어 맨 앞에서 파도와 맞설 것이다. 그것이 방송법과 사규가 사장인 나에게 부여한 책무”라고 창사 61주년 기념사를 밝히는 MBC 박성제 사장과 “우리 금속노동자는 노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윤석열 정부의 업무정지를 명령한다”는 노동자들의 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때로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신의 명령, 정언명령을 따르는 이들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한쪽에서 창졸간에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가슴을 치며 울부짖어도 수백억을 들여 리모델링한 관저에서 그들끼리의 비밀파티를 열고 이를 단독보도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내보내고 중증환자의 형집행정지 연장을 불허하며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국민의 환호 뒤에 조용히 전 정부의 안보실장을 구속한다.
인간이 가진 본능 중 하나가 권력자들이 악마화하는 세력에 대한 혐오와 공포다. 가수 이랑의 외침에 따르면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보도를 멈추지 않는 언론과 생존권과 안전을 요구하는 화물노동자들,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주말마다 차가운 아스팔트를 마다않는 촛불시민들이 폭도다. 기득권인 주제에 기득권답지 않게 사회개혁에 눈을 두는 조국 전 장관과, 사상이 아니라 양심의 명령을 따랐다는 신영복 선생은 이단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노동자들에게 천문학적인 손배를 청구하는 깡패국가를 상대로 노란봉투법을 강화하려는 정치인들과,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오열하며 사과를 요구하는 이태원 참사 어머니들은 마녀다. 그리고 입을 틀어막는데도 예술 검열에 반발하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준비하는 가수 이랑과 ‘윤석열차’를 그린 고등학생 만화가는 늑대다.
보듬고 연대해야 할 이웃을 향해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도 예외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이다. 빵을 만들지만 빵을 먹을 수 없고 포도주를 담그지만 찌꺼기만 허락될 뿐이며 고가의 월드컵 유니폼을 만들지만 2kg 쌀값도 안 되는 일당 2,000원 인상을 요구했다고 해고당하는 사람들은 ‘늑대가 나타났다’ 소리치는 이들과 같은 사람들이다. 똑같이 성문 밖 가난한 사람들이 자식을 굶길 수 없어 맨 앞에서 성문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이들을 마녀와 폭도, 이단과 늑대로 악마화하는 아이러니를 이랑과 코러스는 힘껏 외치고 또 외친다. 다원성과 합리성을 부정한 가부장적인 중세교회가 교권을 지키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 약초를 재배하고 아이를 받고 상담을 하는 여성들과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학살한 ‘다른 생각’이었음을 기억하라고.
가수 이랑은 ‘귀한 내 친구들아/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 모든 것이 지난 후에/ 그제서야 넌 화를 내겠니/ 모든 것이 지난 후에/ 그제서야 넌 슬피 울겠니(환란의 시대)’라며 다음 차례는 우리가 될 수 있으니 굳건한 연대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고 외친다. 올해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 시상식에서 “제 친구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리면서 약간 혁명가 같은 곡들을 노래하고 있다. 부디 이런 곡을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수 있도록 차별과 혐오가 없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바란다”고 말한 그녀의 수상소감은 우리 모두의 희망이 아니던가.
절대자인 신은 예술할 필요가 없고 인간 이하의 짐승은 예술을 할 수 없으며,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 한 황병기 가야금 명인은 예술은 인간가치의 실현이며 곧 인간의 역사라고 했다. 현재 가수 이랑은 감독과 함께 행안부와 부마항쟁기념재단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는 이태원 참사로 재현되고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이렇게 재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8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이웃의 고통에 함께 하는 것이, 하루 14시간 도로를 질주하다가는 죽을 것 같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외치는 화물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것이, 죄의 무게와 무관하게 멸문지화의 고통 속에 있는 한 지식인과 그 가족의 아픔에 함께하는 것이, 죽은 자식의 죽음을 규명해 달라 무릎꿇은 아비 곁에 함께 서는 것이 마녀고 이단이고 늑대라면 기꺼이 마녀가 되고 이단이 되며 늑대가 되어 외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나의 일’이 될 수 있기에 황제펭귄들처럼 파도와 비바람에 맞서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수 이랑과 함께 노래해 보자. “내가 늑대다! 내가 마녀다!!”
도시 성문은 굳게 닫혀 걸렸고 문 밖에는 사람이/ 도시 성문은 굳게 닫혀 걸렸고 문 밖에는 사람이/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 우린 쓸모없는 사람들이 아니오/ 너희가 먹는 빵을 만드는 사람일 뿐/ 포도주를 담그고 그 찌꺼기를 먹을 뿐/ 내 자식을 굶겨 죽일 수는 없소
마녀가 나타났다/폭도가 나타났다/이단이 나타났다/늑대가 나타났다(합창)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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