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용중인 도장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2022.11.1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정권과 대통령을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심정이 집권 초기에는 ‘물가에 내놓은 자기 앞가림 못하는 어린애’를 보는 것과 같았다. 저러다가 무슨 사고를 치고 뭔 일이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되는 마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0.29 이태원 참사가 지나고 나서는 이제 ‘양 떼들 사이에 들어가 있는 굶주리고 난폭한 늑대’를 보는 기분으로 변화했을 것 같다. 즉, 혀를 차면서 걱정하는 기분에서 ‘다음에는 어디서 누가 희생될까’ 소름이 돋는 심정으로 변했으리라.
그리고 당장 다음으로 파괴될 대상 중에 하나가 무엇인지는 갈수록 분명해진다. 바로 언론의 공적 기능과 비판의 자유이다. 현재 윤석열 정권은 먼저 MBC에 대한 전방위적 집중 포격을 가하고 있다. 지금 윤석열 정권이 MBC를 공격하는 논리들은 그 수위와 강경함이 전시상태에 적국에게 보내는 선전포고를 떠올릴 정도이다.
‘MBC가 악의적인 가짜뉴스로 한미동맹을 이간질하며 국가안보와 헌정질서를 위반하며 국익을 해치고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니 말이다. 이에 따라 MBC를 장기간에 걸쳐 탈탈 터는 감사, 세무조사, 근로감독이 진행됐고, 삼성 등에 대한 광고 중단 촉구와 돈줄 끊기 압박이 이뤄졌다.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는 그 과정에서 불거진 에피소드였다. MBC가 아무리 오래된 규모 있는 방송사라고 하더라도 이런 총체적 공격은 견디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와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 회장이 공개적으로 MBC 기자에 대한 폭력적 위해를 겁박해서 경찰이 그 기자를 보호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MBC만큼이나 집중적 표적이 된 건 TBS이다. ‘뉴스공장 등 주요 시사 방송들을 없앨 것이냐 아니면 TBS 구성원 모두가 다 같이 죽을 것이냐’는 협박 끝에 이강택 사장의 자진사퇴와 함께 얼마 전 서울시의회가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폐지 조례안’을 통과시켰고, 이제 커지는 ‘김어준 하차설’과 함께 TBS는 존폐 위기의 고비에 들어섰다.
그다음으로 떠오르는 건 YTN 민영화에 관한 흉흉한 소문들이다. YTN을 재벌이나 <한국경제신문> 같은 대표적인 친기업 우파언론이 인수해서 윤석열 정권의 국정 방향과 정책을 편들어주면 낮은 지지율 문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다. 그 밖에 <더탐사>에 대한 한동훈의 고발과 검찰의 압수수색, 극우단체의 폭행까지 이어지고 있다.
언론시장의 판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
이 모든 것은 전형적으로 ‘보수정권이 권력을 잡으면 언론시장의 판 자체를 바꾸면서 언론 장악과 통제를 시도한다’는 경험적 분석과 예측에 들어맞게 진행되고 있다. 민영방송사를 탄생시켰거나, 종편TV들을 만들면서 전체 판을 흔들고 재구성해 다양한 방식으로 언론을 통제하고 자유를 짓밟았던 과거 보수정권들의 특징이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 때 국가정보원까지 동원해서 언론인들을 통제하고 사찰하던 과거는 올해 초에 이 잘 정리해 보여 준 바 있다.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결국 ‘1공영 다민영’ 체제로 방송 지형을 재편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 윤석열 정권이 이런 식의 언론 장악과 통제를 시도할 것이라는 예상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나왔다. 그때 이미 윤석열 후보는 ‘민주노총 언론노조가 언론을 장악해 허위보도를 일삼고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논리를 펼쳤기 때문이다. 인수위 시절에도 윤석열 당선자 측은 자기들의 마음에 안 드는 <뉴스타파>와 <미디어오늘>의 출입과 취재를 가로막았다.또 중요한 특징은 이러한 언론 장악과 통제 시도는 언론인 출신이면서 윤석열 정권에 유입된 인물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안 그래도 윤석열 정권과 친화적인 <조선일보> 같은 수구언론들은 그냥 정권의 국정홍보처나 대변인실과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예컨대 <조선일보>는 지난 여름에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과 화물연대 파업이 정권을 골치 아프게 할 때 “폴리스 라인을 넘으면 그대로 땅바닥에 제압당하고 허리 뒤로 두 손목이 묶이는 모습을 보고 싶다. (…) 공장 점거, 사장실 점거, 출입구 봉쇄 같은 산업 시설 불법 점거는 즉각적으로 공권력이 작동되어야 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런 <조선일보>에게서 전임 정부 때 이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찾아볼 수 없다. 이를 단지 ‘윤석열에게 체리따봉 받는 게 그렇게 좋은가’라는 식으로 봐서는 안 된다. 더 근본에는 이들이 이익공동체라는 사실에 있다. 거대 족벌언론들은 기득권 권력 카르텔의 핵심적 일부인 것이다.
더구나 윤석열 정권은 ‘한 놈만 팬다’는 정신으로 MBC를 두들길 뿐 아니라, 나머지 언론사들도 위계적 서열에 따라서 충성 경쟁을 시키고 통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해외 순방에서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쫓겨난 언론사, 전용기에 탈 수 있었던 언론사, 전용기 안에서도 따로 대통령과 독대한 언론사라는 3등급 위계 서열로 나뉘어졌다.
이것은 등급 밖으로 밀려난 언론에는 공포와 고립감을, 등급 안으로 들어간 언론에는 위축과 자기 검열을, 최상위 등급에 올라가 있는 언론에는 더 강력한 충성 경쟁을 요구하는 방법이다. 이 효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미 많은 방송과 언론에서 대장동 수사에 대한 검찰발 받아쓰기는 넘치지만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에 대한 보도는 찾기 힘들어진 지 오래다.
‘바이든/날리면’ 사태에서도 일부 족벌언론들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날리면이 맞는 것 같다’며 금세 태도를 바꾸었고, 나머지 언론들도 MBC 옆에서 같이 비를 맞는 적극적 자세는 보기 힘들었다. 결국 MBC 기자가 대통령 전용기에서 쫓겨났을 때 그나마 같이 탑승을 거부한 언론은 <한겨레>와 <경향신문> 밖에 없었다.
덕분에 자신감을 얻은 윤석열 정권은 이제 MBC 기자의 ‘예의’를 문제 삼으며 도어스테핑을 중단하고 기자단에게 자체 징계를 요구했다. 그동안 출근길 문답 때 대통령의 뒤에서 질문을 던지거나 슬리퍼를 신고 있던 기자들은 한두 명이 아니었는데, 이는 전혀 본질이 아닌 것이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총파업) 철회 결정에 대한 대통령실 입장에 대해 밝히고 있다. 2022.12.9. 연합뉴스
권력을 비판하고 의문과 의혹을 제기할 자유
이런 상황에서 모든 방송과 언론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정권의 언론 통제와 장악 시도에 맞서며 언론 자유를 지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과 목소리는 아직 별로 커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MBC는 방어하는 목소리가 들리지만, TBS나 <더탐사>에 대한 연대는 더욱 잘 보이지 않는다.
보수세력과 족벌언론들의 주도로 ‘<뉴스공장>이나 <더탐사>는 정치적으로 편향적이고 과도한 음모론 등으로 정상적인 언론이 아니다’라는 낙인이 찍혀있고, 그 결과 반민주적 탄압에 맞서 손을 잡는 게 아니라 선을 긋고 외면하게 하는 효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시장경쟁이라는 요소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프리랜서 외신기자 라파엘 라시드는 ‘TBS가 독립적으로 생존하면서 광고에 의존한다면, 지금의 인기를 고려할 때 방송사들이 광고 수입을 나눠야 한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TBS를 방어하는 이들도 ‘친민주당이고 정치적으로 편향적인 김어준 씨는 싫지만’이라고 토를 다는 경우가 많다. ‘김어준’을 문제 삼으며 TBS를 없애려는 권력에 맞서면서도 문제의 핵심은 비껴가는 셈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점은 그런 호불호를 떠나서 그가 누구든 권력을 비판하고 의문과 의혹을 제기할 자유를 방어하는 것이어야 한다.
권력과 자본의 압박, 데스크의 차단, 시장경쟁의 압력이 존재하겠지만 더 많은 언론인들의 용기와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얼마 전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는 다른 언론들의 외면 속에서 외롭게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취재와 보도를 계속하는 고립감을 토로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코끼리 사냥을 한다고 생각해보자고요. 누군가 먼저 창을 던졌습니다. 코끼리가 엄청 화를 내면서 창 던진 놈에게 달려들겠죠. 그때 옆에서 창을 든 사람들이 구경만 하고 있으면 처음 창을 던진 사람은 밟혀 죽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 두 번째 창을 던지고, 또 다른 이가 창을 던지면 결국 코끼리는 쓰러집니다. … 우리는 법정에서 나온 이야기만으로 취재해 쓴 거고요. 많이들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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