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는 대통령?
“관저에 다녀오면 말이 바뀐다”는 뒷말이 나도는 이유
윤석열이 불렀는데 안 갔다.
한동훈(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대통령)의 초대를 거절했다. “건강상의 이유”라고 했지만 노골적인 보이콧으로 받아들여질 상황이다. 윤석열 성격에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다.
한동훈이 토요일 새벽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정치인이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여러분, 국민뿐”이라며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라고 말했다. 지난 금요일 홍준표(대구시장)가 한동훈을 두고 “우리에게 지옥을 맛보게 했던 정치검사였고 대통령도 배신한 사람”이라고 한 데 대한 답변일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윤석열이 한동훈을 부른 시점도 애매하다. 책임 공방이 한바탕 지나간 뒤인 데다 굳이 홍준표를 먼저 만난 다음이다.
윤석열 지지율 23%.
선거 이후 처음 나온 갤럽 주간 여론조사다. 3월 말 34%였는데 19일 발표에서는 23%까지 떨어졌다.
이틀 전 국무회의에서 “국정 방향은 옳다”고 말한 뒤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라 충격이 더 크다. 한 여권 관계자가 “이런 지지율에서는 당장 공무원들이 움직이질 않는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데다 박근혜(전 대통령) 시절 최순실 국정 농단이 드러난 직후 25%보다 더 낮다.
“징그럽게도 오래 걸렸다.”
윤석열이 이재명(민주당 대표)에게 면담 요청을 한 걸 두고 중앙일보가 내린 평가다. 취임 23개월 만이다.
이재명은 “25만 원 재난 지원금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이 받기 힘든 카드다.
최상목(경제부총리)이 “전 국민에게 현금 지원을 하는 데 대해 많은 국민이 부정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윤석열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이재원(조선비즈 경제정책부장)의 조언이다. 첫째, 아무 것도 안 하고 남은 3년을 보낼 수도 있고, 둘째, 야당의 협조를 얻어 뭐라도 해볼 수가 있다.
민주당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재명이 채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을 수용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그게 싫어서 지금까지 버텼던 건데 과연 윤석열이 받을까.
조선일보의 지난 토요일 1면 머리기사는 윤석열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국정 운영 변할까”라는 작은 제목과 함께 “이재명에겐 손내밀고 ‘2000명’엔 한발 물러나”라는 제목을 내걸었다.
“받아야 풀리는데 받자니 부담.” 경향신문 기사가 윤석열의 딜레마를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며칠 전 “포퓰리즘은 마약”이라고 했던 윤석열이 말을 바꾸는 것도 부담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법을 의제로 하지 말자고 하면 우리가 들어갈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25만 원 대신 서민용 패키지로.”
궁지에 몰린 윤석열을 위해 조선일보가 내놓은 논리는 일단 “재정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이다. 이미 29조 원(예산의 4.4%)을 국채 이자 갚는 데 쓰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명의 25만 원 지원금은 13조 원의 예산이 더 든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재정 확대를 위한 경기 부양은 맞지 않다”는 것도 반대의 명분이 된다. 조선일보는 “예산을 쓰더라도 정말 아껴서 진짜 어려운 계층에게 도움 되는 지원책을 우선순위를 정해서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윤석열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통치 스타일을 바꾸고 일정과 메시지, 말도 줄이겠다”고 했다. 조선일보가 ‘단독’이라고 달고 내보낸 1면 머리기사다.
다만 조선일보는 “난제가 쌓였다”면서 “만시지탄”이라고 했다. 이재명도 한동훈도 뜻대로 안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이 띄우는 정치인을 의심하라.” 김진애(전 민주당 의원)가 이런 말을 했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박영선(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총리설을 두고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다는 이야기다.
김연철(인제대 교수, 전 통일부 장관)은 “안타깝게도 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오는데 대통령의 대화 능력을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면서 “그것이 대한민국이 직면한 비극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들어보지 못한 수준의 욕설.
윤지나(노컷뉴스 기자)의 이야기다.
“제가 한 참모 출신 인사한테 물어봤어요. 쓴소리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 물었더니, 나한테 그러지 말라면서 처음에는 자기도 얘기를 한다, 그런데 두 번째 욕 먹고 그리고 세 번째까지 격노와 함께 욕을 먹으면 정말 입 닫게 된다. 저한테 네가 한번 당해봐라,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느냐 하더라고요.”
김광일(노컷뉴스 기자)도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의 그 욕이라는 게 우리 보통 직장 생활에서 들을 수 있는 정도의 어떤 지적 이런 수준이 아니라, 정말 살면서 들어보지 못한 수준의 욕을 듣는대요.”
의대 정원 대국민 담화 때는 7시간 뒤에 브리핑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4시간 뒤에 나온 것만 해도 의미있는 진전이지만 아마도 브리핑이 나오기까지 내부에서 상당한 갈등이 있었을 거란 이야기다.
“관저에 다녀오면 다른 말씀을 하신다.”
총선이 끝나니 곳곳에서 대통령실의 구조적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하경(중앙일보 대기자)은 “대국민 메시지 작성 과정에서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홍보수석 등 공식 라인이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관저 정치를 없애는 게 급선무”라는 말도 돈다고 한다. “예스맨이 득세하고 용산 3적, 6적, 8적 리스트가 떠돈다”고도 한다.
중앙일보의 오세훈 인터뷰, 시점이 애매하다.
제목이 “누구라도 할 말하는 분위기 만들어야”인데 누가 봐도 윤석열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분의 리더십 스타일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어떤 참모라도 하고 싶은 말을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분위기는 꼭 필요하다. 많이 알려진 게 앞에 가면 얼어붙는다고 하지 않나. 누구라도 말을 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건 상급자의 책임이다.”
말을 아꼈지만 총선 패배를 “전략의 부재”라고 했고 “집권당으로서 메시지를 분명히 줘야 했는데 선명하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중앙일보 기자가 오세훈(서울시장)에게 물었다. “대선보다 서울시장 5선에 관심 있다고 한 적 있는데 지금은 어떤가.”
답변은? “반반이다. 선출직은 국민의 부름에 늘 응해야 하지만 지금은 일에 깊이 빠져있다. (중략) 일을 잘하면 다음 스케줄은 부수적으로 따라올 거다.”
오세훈이 국민의힘 낙선자들을 초청해 만난 걸 두고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몸풀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조선일보도 오세훈을 비중있게 다뤘다.
의대 정원 세 가지 분수령.
지금까지도 어려웠지만 앞으로 며칠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첫째, 현장을 떠난 의대 교수들이 25일부터 자동 사직 처리가 된다. 사표 제출 이후 한 달이 되는 시점이다.
둘째, 30일이면 의대 증원이 확정된다.
셋째, 5월 초면 의대생들 집단 유급이 시작된다.
전공의들이 일부 돌아온 곳도 있고 교수들이 집단 행동에 돌입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협상이 더 어려워질 거라는 사실이다.
나름 윤석열이 크게 양보한 상황이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증원 0명을 요구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보는 앞으로 3년.
이재명은 다섯 차례 위기를 넘겼다. 첫째, 형수 욕설 파문을 뭉개고 넘겼고, 둘째, 경기 지사 선거 때 허위 사실 공표 의혹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셋째, 대선 경선 때 대장동 사건이 터졌지만 일단 대선 후보가 됐다. 넷째, 법카 논란도 대세를 바꾸지는 못했다. 다섯째, 체포 동의안이 통과됐지만 영장이 기각됐다. 우여곡절 끝에 재선에 성공했고 야당의 압승을 이끌었다.
조선일보는 “윤석열의 레임덕이 가속화될수록 정국 주도권은 이재명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재명은 10개 혐의의 7개 사건을 3개의 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첫째, 대장동과 백현동 병합 사건, 둘째, 공직 선거법 위반 사건, 셋째, 위증 교사 혐의 사건. 조선일보는 둘째와 셋째는 3년 안에 대법원 판결까지 끝날 거라고 본다. 이재명이 빠져나가기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다.
조선일보는 이재명이 선고를 지연시키는 동시에 대선을 앞당기는 전략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윤석열이 중도 퇴진해야 가능한 일이다.
박정훈(조선일보 논설실장)은 “난도 최상급인 이 전략이 성공하느냐는 결국 윤석열에게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계속되는 헛발질로 민심 이반을 자초하고 지지층마저 등 돌리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경고다.
윤석열 찍은 10%가 민주당 찍었다.
중앙일보 조사 결과다. 대선 때 윤석열을 찍은 사람 83.8%가 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찍었고 이재명을 찍은 사람 88.6%가 민주당 후보를 찍었다.
“이종섭(전 호주 대사)과 황상무(전 시민사회수석), 대파 논란 이전에 유권자의 절반(51.2%)이 마음을 정했다”는 분석도 눈길을 끄는데 달리 보면 이런 이슈들이 나머지 절반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도 된다.
유권자들의 감정 온도(호감도)라는 걸 집계했는데 이재명이 43.1도로 가장 높았고 한동훈이 42.2도, 조국(조국혁신당 대표)이 41.7도, 이준석(개혁신당 대표)이 39.0도, 윤석열은 33.5도였다. 핵심 지지층의 온도는 당연히 조국이 가장 높았지만 전체 유권자 평균은 이재명이 더 높았다.
윤석열의 감정온도가 가장 낮다는 건 이조 심판론이 통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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