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용중인 도장
나는 대전에 연고가 없다. 빵을 즐겨 먹지도 않는다. 그래도 성심당은 안다. 대전에서 강연을 하면 누군가 꼭 성심당 빵을 선물하곤 했다. 성심당이 전국에 알려지기 전부터 그랬다. 튀김 소보로 맛이 신기했다. 대전 사람들이 하필이면 왜 성심당 빵을 주는지는 몰랐다.
지금은 안다. 대전 시민들이 성심당에 애착을 느끼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대전역 2층의 성심당 매장에 줄을 서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궁금하다면 성심당의 유래와 기업 문화와 경영 방식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시라. 성심당을 오늘의 주제로 삼은 것은 코레일의 역사 매장 임대료 책정 방식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관료집단 작태 드러낸 성심당 대전역사점 임대료 논란
나라꼴이 이런데 한가롭게 ‘빵집 임대료’ 문제를 다루느냐고 책망하지는 마시라. 대통령과 정부와 집권당의 행태는 비평의 한계를 넘어섰다. 할 말은 많지만 하기가 싫다. 비평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싶다. 게다가 성심당 매장 임대료 논란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남의 건물에서 영업하는 자영업자가 살기 힘든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국리민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추구하는 관료집단과 공기업의 작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윤석열 탈레반’의 방송통신위원장 연쇄 사퇴 파동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성심당은 대전역사점에서 월평균 26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월 1억 원을 임대료로 코레일에 납부했다. 실무는 자회사 코레일유통이 수행하지만 본사인 코레일과 임대수입을 나눠먹으니 둘을 합쳐 코레일이라고 하겠다. 지난 4월 코레일은 임대계약이 끝난 대전역사 2층 성심당 매장 91평을 경쟁 입찰에 부쳤는데, 최소 월세로 4억 4100만 원을 요구한 게 문제를 일으켰다. 하필이면 왜 그 액수인가? 지난해 성심당 대전역사점 월평균 매출액에 0.17을 곱해 산출한 것이었다. 코레일은 역사 매장 임대료를 입점업체 매출액의 17~49.9퍼센트로 정한 자체 규정을 근거로 내세웠다.
평당 임대료가 월 485만 원이라니, 어떤 기업이 거기 들어오겠는가? 성심당은 입찰 때마다 기존 월세와 같은 1억 원을 써냈다. 다른 응찰자는 없었기 때문에 다섯 차례 모두 유찰했고, 규정에 따라 다음 입찰의 최소 월세는 3억 원 선으로 내려갔다. 오는 10월까지 새로운 임대계약을 맺지 못하면 성심당은 대전역사를 떠나야 한다.
성심당 대전역점. 성심당 홈페이지
경제학자 출신 국힘당 국회의원의 ‘부당 특혜’ 주장이 발단
이 사태의 발단은 국민의힘(국힘당) 국회의원이 작년 국정감사에서, 코레일이 성심당에 부당한 특혜를 제공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왔고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잠시 동안의 교수직을 거쳐 서울 강남구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던 그는 이번 총선에서 경기도 화성시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국정감사와 언론 인터뷰에서 온갖 말을 쏟아낸 그의 주장은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대전역사의 다른 입점업체는 매출의 최소 17퍼센트를 임대료로 내는데 성심당 임대료는 매출의 5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왜 부당한 특혜를 제공하는가. 성심당도 다른 업체와 같은 수준의 임대료를 내게 하라.” 경제학자는 쉬운 문제도 어렵게 설명하는 직업병이 있다. 그 국회의원도 그랬다. ‘시장의 실패’니 ‘정부의 실패’니 하는 전문용어를 휘두르면서 코레일을 비판하고 성심당더러 대전역사점의 영업이익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왜 그랬을까? 성심당의 기업 문화와 경영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을 수 있다. 공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야 국가와 국민에게 좋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세우려는 정의감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다. 동기가 무엇이었든, 그는 한 가지를 분명하게 확인해 주었다. 경제학자나 경제전문가의 견해를 무작정 믿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의 주장이나 코레일의 임대료 산정 방법을 일일이 분석 비평하지는 않겠다. 경제학을 몰라도 상식만 있다면 누구나 이 문제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굳이 경제학 이론이나 지식을 동원한다면, 대학 교양 과정에서 배우는 경제학개론 정도로 충분하다. 경제학보다는 성심당 대전역사점의 연혁을 아는 게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더 요긴하다. 몇 가지 중요한 사실만 소개하겠다.
성심당 대전역점. 성심당 홈페이지
영업이익 아닌 매출 연동 임대료 착취, 일제강점기 악덕지주 행태
1. 2012년 염홍철 대전시장은 대전역 탑승구 근처에 지역 대표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며 성심당과 코레일을 설득했다. 성심당은 적절한 수준의 정액 임대료를 내는 조건으로 역사 1층에 작은 매장을 냈다.
2. 2015년 대전역사 2층 푸드 코트가 영업 부진으로 문을 닫으면서 임대계약을 중도 해지했다. 2층은 유동인구가 적어서 식당 영업이 어려웠다. 공개경쟁 입찰을 실시했지만 참가한 업체가 없었다. 코레일은 2016년 연간 임대료 2억 2000만 원의 자산임대 방식으로 비어 있던 2층 매장을 성심당에 내주었다.
3. 2019년 코레일유통과 성심당은 월세를 다섯 배 넘는 1억 원으로 올리는 조건으로 임대계약을 5년 연장했다.
4. 2024년 4월 코레일은 임대료를 매출액에 연동하는 방식으로는 새로운 입점업체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매출액의 17퍼센트를 최소 임대료로 책정한 경쟁입찰을 실시했다.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임대료가 터무니없다. 매출액의 17~49.9퍼센트를 가져간다니, 코레일의 행태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의 악덕지주나 다를 바 없다. 처음에는 오보가 아닌지 의심했다. 전국의 기차역사 입점업체는 식당, 카페, 옷가게 등이 많다. 영업이익이 아니라 매출의 17-49.9퍼센트를 건물주가 가져간다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다 있는가. 홈쇼핑이나 백화점이 그런 식으로 제조업자를 뜯어먹는다는 말을 들었지만 공기업이 영세 자영업자를 그런 방식으로 착취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것은 성심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차역사 입점업체 모두의 문제다.
성심당 대전역점에서 빵을 사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성심당 인스타그램
“내가 건물주라면 아예 임대료 받지 않을 것이다”
둘째, 대전역사 매장 덕에 누가 덕을 보았는가. 성심당인가 코레일인가? 코레일이 성심당 매출 증가에 기여한 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매장이 기차역에 있어서 매출이 올랐다고? 그렇다면 푸드 코트는 왜 망했는가? 대전역사 2층은 입점업체가 큰 손실을 보면서 임대계약을 중도 해지할 정도로 장사가 되지 않았다. 그 공간이 유리해서 성심당이 성공한 게 아니다. 영업에 불리한데도 성심당이라서 번창한 것이다. 그 덕에 대전역사 유동인구가 늘었고 평균 체류시간이 길어졌다. 다른 입점업체의 매출이 늘었고 코레일의 임대료 수입도 증가했다. 성심당이 그 대가로 받은 건 없었다.
이런 것을 경제학에서는 ‘외부효과’라고 한다. 코레일과 성심당을 비난한 국회의원이 들먹였던 ‘시장의 실패’ 현상이다. 성심당이 일으킨 외부효과는 다른 입점업체와 코레일에 이익을 안겼다. 대전역사가 개인소유 건물이고 내가 건물주라면 성심당 매장의 임대료를 아예 받지 않을 것이다. 성심당은 부당한 특혜를 누리지 않았다. 코레일은 부당한 손실을 입지 않았다. 만약 성심당이 대전역사에서 나간다면 코레일은 외부효과를 누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사라지는 것은 2층 성심당 매장 월세 1억 원만이 아니다. 다른 입점업체의 매출 연동 임대료 수입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내가 성심당 경영자라면 어떻게 할까? 현행 월세 1억 원을 유지한다면 대전역사점을 그대로 두겠다. 영업이 잘 되고, 상징성도 있고, 대전역사의 다른 입점업체와 코레일에도 도움이 된다. 굳이 철수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월세를 매출의 17퍼센트로 올려야 한다면 미련 없이 철수하겠다. 대전역에서 걸어서 5분 안에 갈 수 있는 상업지구 빌딩의 평당 매매가격이 6000만 원 수준이라는데, 평당 월세 485만 원을 내면서 대전역사에 머무를 이유는 없다. 마음만 먹으면 1년치 월세로 백 평짜리 1층 매장을 구입할 수 있다. 3년치 임대료면 대전역 사거리의 소규모 빌딩을 살 수 있다. 적당한 매물이 나오면 은행 대출을 끼고 당장 매입하겠다.
성심당 대전역사점 [촬영 안철수] 2024.6.1. 연합뉴스
시장원리 어긋나는 착취 제도 포기하고 경쟁 입찰이 낫다
성심당 대전역사 매장은 ‘좋은 외부효과’를 창출한다. 이론적으로는 ‘시장의 실패’지만 정부가 개입할 필요는 없다. 코레일의 임대료 정책은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착취 제도다. 아무리 문제가 많다 해도 시장원리가 봉건적 소작제도보다는 낫다. 코레일은 매출 연동 임대료 산정방식 같은 불합리한 제도를 버리고 전국 역사의 모든 매장을 경쟁 입찰에 부치는 게 맞다. 대전역사 2층의 성심당 매장도 마찬가지다. 둘 이상의 응찰자가 있으면 높은 액수를 쓴 업체에 주라. 응찰자가 하나뿐이라면 협상해서 임대 계약을 하든지 그냥 비워 두라. 그게 상식과 세상 이치에 맞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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