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웬일인가. 「동아일보」가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의 8월 16일 기자간담회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 보도하다니! 진성준 의장은 국회의 2023년도 결산안 심사를 앞두고 56조 원의 세수 결손 문제를 거론하면서 정부가 한국은행뿐만 아니라 민간 자금도 빌려 썼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세수 결손 규모 56조 원이었다는 것은 정부가 넉 달 전 발표했으니 새로운(new) 정보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우체국보험 적립금 2500억 원을 연리 4.04퍼센트에 빌렸다는 것은 새로운 정보다.
국가가 돈이 없다는 뉴스가 왜 「조선일보」 눈에는 띄지 않았을까?
그 사실을 뉴스(news)로 인정한 언론사는 많지 않았다. MBC와 「전자신문」같은 중도성향 언론사들이 제목에 ‘우체국보험 적립금’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동아일보」 「뉴스1」 「머니투데이」 등 몇몇 보수신문이 그렇게 한 것은 평소와 다른 행동이었다. 어떤 신문은 기사 본문에만 그 사실을 넣어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를 포함한 대다수 신문과 방송은 ‘입꾹닫’ 방침을 견지하고 있다. 뉴스 가치가 없는 사실이라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보도하지 않은 게 잘못이라고 하지는 않겠다. 관점에 따라서는 뉴스 가치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민주당은 우체국보험 적립금을 빌려 세수 결손을 땜질한 것이 국가재정법 위반일 수 있다고 했지만 다툼의 소지가 있는 주장이다. 형식 논리로 법률 위반이 된다고 해도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은 없다. 국가는 조세징수권이 있어서 파산하지 않는다. 우체국보험이 이자를 받지 못하거나 원금을 떼일 위험은 없다. 연 4.04퍼센트 금리도 적당한 수준이다. 국민에게 알려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뉴스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중에 현금이 없어서 한국은행뿐 아니라 민간 금융기관에서까지 돈을 꾸었다는 것은 큰 문제다. 정부가 나라살림을 제대로 꾸리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당장 이런 의문이 떠오르지 않는가. 정부는 왜 돈이 없나? 이유는 자명하다. 세금을 계획한 만큼 걷지 못해서다. 이것을 ‘세수 결손’이라고 한다. 정부는 해마다 국회가 의결한 예산의 세입 액수만큼 세금을 걷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이유 때문에 세금이 그만큼 걷히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경우다.
세수 결손이 나면 정부는 금융기관의 돈을 빌려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초단기 또는 단기 대응책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은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러면 그만큼 국가채무가 늘어난다. 정부가 자금이 부족해 계획한 대로 예산을 집행하지 않으면 국민들 가운데 누군가는 피해를 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부가 우체국보험 적립금을 빌려 썼다는 사실은 국민에게 알릴 가치가 있는 뉴스가 된다. 국민의 삶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야 이 사실의 뉴스 가치를 부정할 수 있다.
3월 들어 10일까지 반도체 수출이 41%나 감소하고, 대중국 수출도 35%가 감소한 영향으로 연간 기준 무역적자가 230억 달러 수준을 기록했다. 사진은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에서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2023.3.1. 연합뉴스
온통 마이너스 기록한 낙제 수준의 2023년도 경제성적표
국회의 결산안 심사는 언제나 중요하지만, 2023년도 결산안 심사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윤석열 정부의 나라살림 운영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첫 회계년이기 때문이다.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통치 않은 정도가 아니다. 낙제 수준이라고 하는 게 맞다. 지난 4월 11일 국무회의가 의결한 <2023년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정부의 총수입은 세입예산보다 52조 원 적은 574조 원이었다. 총수입이 전년보다 무려 44조 원 줄었다. 총지출도 예산 639조 원보다 28조 원 적은 611조 원에 그쳤다. 지방재정교부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비롯해 지방정부에 주어야 할 돈을 법이 정한 대로 지급하지 않아 지방정부와 지방교육청 살림까지 엉망으로 만들었다. 정부가 편성하고 국회가 수정 의결한 2023년도 예산에 따르면 사회보장성기금을 포함한 통합재정수지는 13조 원 정도만 적자를 내야 했지만 실제 적자는 37조 원이었다. 사회보장성기금수지 흑자 50조원을 뺀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87조 원이나 되었다. 이것이 언론에서 말하는 ‘재정적자’다. 여기에 다른 요인도 일부 작용해, 2023년 국가채무는 113조 원 늘어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언제나 국가재정을 건전하게 운영했다고 자랑한다. 알면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몰라서 틀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는 경제통계에 전적으로 무지한 듯하다. 2023년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의 3.9퍼센트를 넘겼는데도 그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뭐가 뭔지 전혀 모른다는 분명한 증거다. 세수 결손은 심각한 문제다. 정부가 예산보다 28조 원이나 적게 지출했는데도 87조 원의 재정적자가 난 것은 국세 수입이 줄어든 탓이었다. 국세 수입은 왜 줄었는가? 첫째 이유는 부자 감세다. 윤석열 정부와 국힘당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추고 감면 제도를 확대했으며 종부세 실효세율을 폐지에 가까울 정도로 인하했다. 그러나 이것은 세입 감소의 원인이지 엄격한 의미의 세수 결손 이유는 아니다. 세율 인하로 인한 세수 감소 효과는 2023년도 예산 세입에 이미 반영했다. 세수 결손은 조세 수입이 예산안 편성 당시 예측했던 것보다 더 많이 줄어서 생긴 현상이다.
그렇다면 세입 예측은 왜 틀렸는가? 2023년도 경제성장률이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한 2022년 여름에 예측했던 것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경제가 불황에 빠지면 기업의 순수익이 감소해 법인세 납부액이 줄어든다. 고용이 악화하고 임금인상률이 하락하면 근로소득세 납부액도 증가세가 멈추거나 줄어든다. 불황이 깊어져 장사가 되지 않으면 자영업자의 종합소득세 납부액도 줄어든다. 민간 소비가 침체하면 소매 판매가 줄어 부가가치세 세입도 감소한다. 한마디로 세수 결손은 2022년 2분기부터 나타난 불황의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조세 수입을 늘리려고 세율을 올리면 경기가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세수 결손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을 해소해야 한다.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참여연대, 양대노총, 민달팽이유니온 등 노동·시민단체로 구성된 '재벌부자감세 저지와 민생·복지 예산 확충 위한 긴급행동' 관계자들이 지난해 10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재벌·부자 감세 중단과 민생·복지 예산 확충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10.19.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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