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 곡은 Birdland Jazz Hall에서의 연주 앨범에 수록된 것인데 음반사에서 콜트레인의 여러곡을 재편집한 앨범중에서 골랐습니다. 음질도 좋고 그래픽이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합니다. 그래픽의 화풍이 마치 영국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곡의 해설을 찾아 보던 중 장문의 콜트레인의 전 음악생애를 자세히 기술해 놓은 글이 있어 많이 길지만 올려 봅니다. Alabama에 관한 항목은 역사적인 사건에 연루되어 있어 제가 따로 굵은체로 강조했습니다.
재즈의 임계점을 넘어선 거인/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1926.9.23.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햄릿 ~ 1967.7.17. 미국 뉴욕 헌팅턴) 존 콜트레인은 재즈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와 표현양식에 대한 실험을 거듭하여 그 임계점을 넘어선 혁신적 색소폰 연주자이다. 그의 음악을 들을 때면, 물이 수증기가 되어 날아오르는 순간을 떠올리곤 한다. 일정한 압력 아래 온도가 임계점(Critical Point)을 넘어설 때 물은 공기 중으로 증발한다. 열이 가해진 물은 에너지를 품어 부피가 커지며 입자간 거리가 멀어지고, 결국 자유롭게 날아간다. 재즈는 이처럼 연주자간 상호교감을 통해 에너지가 응축되고, 결국 그 음향 너머로 비상하는 듯한 자유로움을 들려준다. 특히, 콜트레인은 서정적인 연주로 내면 깊이 침잠하다가도 빠르게 음을 내뱉어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듯한 전개로 비상하곤 한다. 이는 마치 발라드의 바다 속으로 깊이 가라 앉았다가 즉흥연주의 날개를 달고 물 위로 비행하는 듯한 음악적 환희를 안겨준다. 콜트레인은 1926년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아마추어 음악가인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0대에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 등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며, 존은 구두닦이 등으로 가계를 돕는 가운데 음악에 대한 열망을 키워간다. 1940년대 세계대전으로 미국 북부와 서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군수산업을 기반으로 도시화가 급속히 진전되었고, 인종차별에 시달리던 남부 흑인들은 북부와 서부로 이주한다. 북부와 서부 도시들은 흑인들에게 일자리를 통한 경제적 자유를 주었고, 인종 편견으로부터 다소간 해방될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한다. 존의 어머니 역시 가정부를 전전하다가 결국 학생인 아들 존을 주변 친척에게 맡기고 일자리를 찾아 북부로 떠난다. 1943년 고교 졸업 후 존 역시 필라델피아로 이주하여 어머니와 재회한다. 필라델피아는 동북부 주요 도시 중 하나로 다수 클럽과 음악교육기관이 있어 연주자를 지망하는 존에게 보다 적합한 환경을 제공했다. 특히, 듀크 엘링턴 같은 스윙 빅-밴드 뿐 아니라, 루이스 조던과 같은 점프 블루스 개척자 등이 필라델피아 지역 클럽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콜트레인은 유럽에서 이주해온 음악가가 설립한 오른스타인 음악학원, 그라노프 스튜디오 등에서 수학하고, 지역 클럽에서 연주하곤 했다. 또한, 1945~46년 징집으로 하와이 군악대 복무 후, 필라델피아 지역 클럽에 돌아와 여러 밴드를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1940년대 뉴욕을 찾은 존 콜트레인은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등이 주도하는 비-밥 혁명 앞에서 연주자로써 새롭게 각성한다. 즉흥연주 중심의 비-밥은 춤을 추는 빅-밴드 스윙을 넘어 연주자의 역량과 스타일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정규 연주시간 이후 늦은 밤 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잼세션에 뛰어드는 여타 연주자들처럼 존도 연습에 몰두한다. 그리고 콜맨 호킨스나 덱스터 고든 등 스윙 베테랑들의 풍부한 화성은 살리되 변화무쌍한 음계 변화를 강조하는 콜트레인 만의 독창적 스타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결국, 1950년대 초 존은 디지 길레스피, 자니 호지스 등과 활동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당시 당시 연주자들이 피하기 어려웠던 마약중독으로 인하여 밴드에서 해고 당하곤 했다. 1950년대 중반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협업은 콜트레인의 음악 여정에 전환점을 제공한다. 마일스는 콜럼비아 레코드와 새로운 계약을 앞두고 있었으나, 프레스티지 레이블과 녹음하기로 선약한 계약 조건을 이행해야 했다. 그는 피아노 레드 갈란드, 베이스 폴 챔버스, 드럼 필리 조 존스 그리고 색소폰 존 콜트레인을 기용한 퀸텟을 꾸린다. 그리고 프레스티지 레이블과 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마라톤 세션에 돌입한다. 결국, 「Cookin'」(1957), 「Relaxin'」(1957), 「Workin'」(1958), 「Steamin'」(1961)은 몇곡을 빼고 1956년 10월 26일 단 하루만에 탄생한다. 틀에 매이지 않는 여유로움 가운데 솔로이스트와 리듬섹션의 긴밀한 상호교감으로 채워진 위 앨범들은 모던재즈의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콜트레인을 포함한 마일스 퀸텟은 콜럼비아 레코드 입성작 「'Round about Midnight」(1957)을 녹음한다. 텔로니어스 몽크의 스탠다드 'Round Midnight'은 마일스의 수줍지만 섬세한 트럼펫, 그리고 이와 대척점에 있는 콜트레인의 거침없으면서도 차분한 열정이 정반합의 미학을 들려준다. 1957년 봄, 존은 마일스로부터 마약중독을 이유로 해고 당한다. 하지만 이는 존이 독립적인 음악가로 바로 서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다. 충격을 받아 각성한 그는 절치부심 끝에 복귀하여 당해 가을 리더 데뷔작 「Coltrane」(1957)을 내놓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아내 나이마(Juanita 'Naima' Grubbs)로부터 따듯한 보살핌을 받는다. 두 사람은 1955년 결혼했는데, 나이마는 이슬람교도였으며 한차례 이혼하여 딸이 있었다. 존은 그 딸을 입양하고 이슬람교로 개종한다. 그리고 훗날 '영적인 각성(Spiritual Awakening)'이라 표현한 종교적 체험과 함께 마약을 극복한다. 존의 할아버지는 교회를 개척한 독실한 목사였기에 사실 콜트레인은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교도 여성과 결혼하여 이슬람교나 힌두교에도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영적 체험의 매개로서 아랍음악과 인도음악, 아프리카음악 등에도 열린 자세를 갖고 자신의 음악적 표현양식으로 소화해내려고 꾸준히 노력한다. 한편, 콜트레인은 1957년 텔로니어스 몽크와 6개월여의 만남을 통해 또 다른 음악적 성장 기회를 갖는다. 몽크 밴드에 협주자로 참여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음악적 교감을 나눈다. 몽크는 콜트레인에게 동시에 여러 음을 연주하는 새로운 연주기법을 권하거나, 보다 긴 솔로를 용인하는 등 열린 자세를 통해 그의 음악적 도전을 뒷받침했다. 소니 롤린스가 참여했던 「Brilliant Cornors」(1956) 이후 몽크는 콜트레인과 함께 「Monk's Music」(1957), 「Thelonious Monk with John Coltrane」(1961) 등을 녹음한다. 몽크가 여유롭게 타건을 짚으며 공백을 제공하면 콜트레인이 빠르게 음계를 훑어내는 블로윙을 통해 연쇄적인 음의 충돌을 만들어낸다. 당시, 두 사람의 음악적 교감은 21세기가 되어서야 복각된 1957년 11월 카네기홀에서의 공연 녹음 「At Carnegie Hall」(2005)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1957년 9월 콜트레인은 블루노트 레이블에서의 유일한 앨범 「Blue Train」(1957)을 녹음한다. 1939년 유대계 독인인 이민자 알프레드 라이언이 설립한 블루노트는 연주자에게 충분한 리허설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면서 그 리허설조차 급료를 지급하는 넉넉한 태도로 연주자들에게 신뢰를 얻었다. 특히, 라이언은 재즈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갖고 있었기에 밤늦게 공연이 끝나는 연주자들을 위하여 새벽 무렵 녹음실을 예약하고 다과를 대접하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Blue Train」 역시 이 같은 배려 위에 테너색소폰 존 콜트레인, 트럼펫 리 모건, 트롬본 커티스 풀러, 피아노 케니 드류, 베이스 폴 챔버스, 드럼 필리 조 존스의 식스텟 편성으로 완성도 높게 제작되었다. 증기기관차 마냥 커티스 풀러와 리 모건이 선언적인 경적을 울리는 'Blue Train'부터 시작하여, 콜트레인은 정교한 코드 진행과 탁월한 기교를 바탕으로 각 연주자의 내밀한 상호교감을 이끌어 냄으로써 밴드 리더로서의 열정을 유감없이 분출한다. 1958년 2월 녹음한 「Soultrane」(1958)을 통해 콜트레인은 본격적으로 연주자로서 독창성을 인정받기 시작한다. 이는 피아노 레드 갈란드, 베이스 폴 챔버스, 드럼 아트 테일러의 피아노 트리오와 함께 쿼텟 편성으로 발표한 앨범이다. 20대부터 주목받던 소니 롤린스와 달리 콜트레인은 20대 중후반까지 공격적이지만 다소 딱딱한 톤의 연주자로 인색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대 말에 들어서며 마일스나 몽크와 협연에서 개성있는 조화를 보였고, 「Blue Train」에서 밴드 리더로서 정교하게 주제를 표현하는 세련된 감각을 들려주어 존재감을 드러낸다. 결국, 「Soultrane」의 'Russian Lullaby'에 이르러 평론가 아이라 기틀러가 '소리의 융단 (Sheets of Sound)'이라 명명한 독보적 표현양식이 곡 해석에 완전히 녹아든다. 복합적인 화음을 빠른 선율로 표현하는 입체적인 음향의 구축물을 만들어 내는 그의 표현력은 감상자에게 소리 너머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요컨데 1958년을 전후로 콜트레인표 연주기법 완성이 곡 해석과 맞물려 스탠다드조차 그의 연주임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Lush Life」(1961)는 프레스티지에서 1957년에서 1958년 사이 숨겨진 녹음을 편집한 앨범이다. 콜 포터의 'l Love You'와 같은 스탠다드에서 발라드와 빠른 선율 진행을 곡예처럼 오가는 콜트레인 특유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한편, 1959년초 콜트레인은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 다시금 합류하여 「Kind of Blue」(1959)를 녹음한다. 트럼펫 마일스 데이비스, 테너 색소폰 존 콜트레인, 알토 색소폰 캐논볼 애덜리, 피아노 빌에반스, 베이스 폴챔버스, 드럼 지미 콥의 편성으로 잔잔한 혁명을 들려준다. 'So What'에서 마일스는 빌 에반스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보이싱 위에 서정적이며 공백미가 돋보이는 연주를 들려준다. 반면 콜트레인은 절제된 듯하면서도 음을 흩뿌리는 연주로 강렬한 전환을 가져오고 지미 콥의 드럼은 슬며시 폴리 리듬을 밀어 넣어 곡의 전개에 파도의 일렁임과 같은 오묘한 스윙을 가미한다. 이처럼 물흐르듯 변화무쌍한 전개는 선율 위주의 모드 기법 접근을 통하여 즉흥연주에 보다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가능했다. 1959년 5월 콜트레인은 아틀랜틱 레코드에서 녹음한 「Giant Steps」(1960)를 자신의 청년시절을 사로잡았던 비-밥 혁명에 헌정(Tribute)한다. 테너 색소폰 존 콜트레인, 피아노 토미 플래니건, 베이스 폴 챔버스, 드럼 아트 테일러의 쿼텟 편성이다. 「Kind of Blue」가 코드를 내려놓은 잔잔한 너울과 같았다면 「Giant Steps」는 급진적 코드 변화 가운데 맹렬히 질주하는 압도적인 풍랑을 들려준다. 타이틀곡 'Giant Steps'에서 콜트레인은 단순명료한 선율의 제시 뒤에 빠른 코드 전환과 더불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음향의 분출과 잘게 쪼개진 프레이징의 향연을 전달한다. 제목 그대로 '거인의 발걸음'과도 같은 코드 전환을 통해 콜트레인 특유의 맹렬한 블로윙은 융단폭격과도 같은 공격성으로 비-밥 형식미를 초토화한다. 청년 비-밥 연주자들이 꿈꾸었던 극단적인 템포의 코드전환을 선율 진행과 일치시킴으로써 비-밥의 표현양식이 도달할 수 있는 임계점(Critical Point)에 콜트레인의 발걸음이 도달한 셈이다. 1960년 10월, 「My Favorite Things」(1961)를 통해 '콜트레인'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넘어서는 하나의 장르로 각인된다. 전작 「Giant Steps」가 코드 진행의 임계점에 도달했다면, 「My Favorite Things」는 선율 중심의 모드를 아우르며 그 임계점을 돌파한다. 향후 쿼텟의 고정 멤버가 되는 피아노 맥코이 타이너, 드럼 엘빈 존스가 함께하며, 뮤지컬 「Sound of Music」의 왈츠 테마 'My Favorite Things'를 14분간에 걸친 주술적인 연주로 전달한다. 필라델피아 출신으로 콜트레인 처럼 그라노프 스튜디오에서 수학한 띠동갑 후배 맥코이 타이너는 세련되면서도 팽팽한 긴장이 깃든 타건으로 주제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엘빈 존스는 록드러머를 연상시키는 명징한 스내어 활용과 폭발적인 폴리리듬으로 콜트레인의 변화무쌍한 소프라노 색소폰 즉흥연주를 알차게 뒷받침한다. 이후 발표한 「Ole Coltrane」(1961)은 'My Favorite Things'의 연장선상에 놓인 18분여의 'Oleo'를 통하여 넘실대는 스페인풍 리듬 위에 콜트레인의 공격적이면서도 날아오르는 스윙을 전한다. 1961년초 존 콜트레인은 신생 재즈 전문 레이블인 임펄스와 계약한다. 임펄스 레이블은 ABC방송과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합작한 대형 음반사인 ABC파라마운트의 투자를 통해 설립된 신생 재즈 전문 레이블이었다. 초대 프로듀서인 크리드 테일러는 선도적인 경쟁사인 아틀랜틱 레코드로부터 레이 찰스에 이어 존 콜트레인을 영입함으로써 임펄스 레이블 운영의 토대를 닦는다. 두번째 프로듀서인 밥 실은 콜트레인의 전위적인 급진성과 거대 자본의 음반제작자 역할 사이에서 유연한 수완을 발휘한다. 콜트레인 고유의 실험적인 연주를 고스란히 담은 라이브 앨범 「Live at the Village Vanguard」(1962)를 발표하는 한편, 대중적인 호소력을 갖는 「Ballads」(1961)나, 듀크 엘링턴, 자니 하트만 등과의 협업 앨범을 제작해 낸다. 콜트레인은 이례적인 대형 자본의 재즈 기획사였던 임펄스로부터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는 동시에 다양한 형태의 앨범 제작에 참여하여 대중적 접점을 확보해 낸다. 1961년 11월 뉴욕 빌리지 뱅가드에서의 녹음을 담은 「Live at the Village Vanguard」(1962)는 신생 레이블에서 독립성을 확보한 콜트레인의 포효를 담고 있다. 피아노 맥코이 타이너, 드럼 엘빈 존스 외에 베이스 지미 게리슨이 합류하여 콜트레인 사운드를 상징하는 쿼텟이 완성된다. 장장 16분에 달하는 'Chasin' the Train'은 장대한 서사시와 같이 변화무쌍한 악센트가 묻어나는 즉흥연주의 향연을 펼쳐보인다. 그리고 'Softly, As in a Morning Sunrise'에서는 맥코이 타이너의 산뜻한 타건이 돋보이는 가운데 엘빈의 묵직한 브러쉬가 가세하고 콜트레인 역시 거침없이 질주하는 즉흥 연주로 라이브의 묘미를 전한다. 이 스탠다드는 소니 롤린스가 「A Night at the Village Vanguard」(1957)에서 피아노가 빠진 편성의 라이브로 선보이기도 했다. 콜트레인의 라이브에서는 피아노 맥코이가 참여함으로써 「Sonny Clark Trio」(1957)나 「Kelly Blue」(1959)와 같은 피아노 트리오 편성의 명료함이 가미된 가운데 보다 경쾌하고 힘있는 전개를 들려주어 각 앨범을 비교해 들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한편, 1962년 콜트레인은 프랭크 시내트라, 냇 킹 콜 등의 감미로운 스탠다드를 담은 「Ballads」(1962)를 내놓는다. 서정적인 발라드는 연주자의 감정몰입과 전달력이 관건인 바, 콜트레인은 끊임없는 연습과 성찰을 통하여 이러한 기본기를 충실히 닦은 연주자임을 들려준다. 거꾸로 이해하자면 「Giant Steps」 같은 급진적 앨범은 「Ballads」 같은 출중한 기본기 위에서 표현영역을 확장하려는 초월적 지향점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고 판단된다. 이 지점에서 집고 넘어가야 할 역설적인 사실은 그가 「Giant Steps」에서 도달한 비-밥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제3의 길로 발라드로의 환류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즉, 그는 발라드에 뿌리를 둔 연주자였고, 기존 재즈를 넘어서려는 다양한 표현양식 상의 시도를 발라드를 중심으로 종합함으로써 프리-재즈에 도달한다. 「Ballads」 이후에도, 그는 서정미가 깃든 협업 앨범들을 제작한다. 「Duke Ellington & John Coltrane」(1963), 「John Coltrane and Johnny Hartman」(1963)은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각별한 협업 앨범이다. 매 앨범 콜트레인 고유의 독창적인 스타일과 빼어난 협업 연주자 간의 화학 작용이 몰입도 높은 감상의 재미를 자극한다. 결국, 실험성과 대중성을 아우르는 제작사의 기획력에 힘입어 콜트레인은 쉴틈없이 미국, 유럽 등 연주회를 오가는 스타이자 거침없이 쟁점을 던지는 무게감 있는 예술가로 거듭난다. 특히, 라이브 앨범 「Live at Birdland」(1963)에서는 백인 우월주의 집단 큐클랙스클랜(KKK)이 알라바마 지역 교회에서 폭탄으로 4명의 흑인 소녀를 학살한 사건을 'Alabama'의 맹렬하고도 고통스러운 연주로 비판하여 당대 민권운동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다. 1964년 4월과 6월에 걸쳐 녹음한 「Crescent」(1964)에서 콜트레인은 발라드를 매개로 과거의 자신을 넘어서는 프리-재즈적 비전을 제시한다. 주문을 거는 듯한 존의 차분한 블로윙으로 시작하는 타이틀곡 'Crescent'는 맥코이 타이너와 엘빈 존스의 탄력적인 추임새에 힘입어 점차 고조되고 쇳소리와 파열음을 동반하는 몰아의 경지에 도달한다. 다소 평범하게 느껴지는 발라드로 시작하는 'Wise One'은 맥코이와 엘빈의 리듬 섹션이 조심스럽게 라틴 리듬을 가미하는 가운데 절제와 도약을 오가는 즉흥연주를 거쳐 프리-재즈에 가까운 발라드로 승화된다. 전체적으로 콜트레인 특유의 거칠게 음을 흩뿌리는 표현양식이 차분한 발라드를 빌어 보다 정제되고 고도화됨으로써 프리-재즈로의 본격적인 전회가 예고되는 앨범이다. 이미지 설명을 입력해주세요. 1964년 12월 콜트레인은 그의 경력에 있어 정점으로 인식되는 「A Love Supreme」(1965)을 녹음한다. 전작 「Crescent」가 프리-재즈를 향한 복선이었다면, 「A Love Supreme」은 그 음악적 전회의 개인적이고도 종합적인 완성이다. 과거 마약중독 극복 과정에서 '영적인 각성(Spiritual Awakening)'으로 언급된 종교적 체험이 음반 라이너 노트에 기재되어 있으며, 그 열반의 과정을 'Acknowledgement(감사)', 'Resolution(결심)', 'Pursuance(추구)', 'Psalm(찬미)' 4악장으로 전한다. '감사'가 종교적 체험에 대한 주제를 친절히 안내한다면, '결심'과 '추구'는 종교적 관점에서의 '설교'와 '전도'를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찬미'는 영적 체험 그 자체를 시적으로 낭송한다. 다큐멘터리 「Chasing Trane」(2016)에서 산타나는 다른 음악가가 '장르'를 연주한다면, 콜트레인은 '인생'을 연주한다고 말한다. 「A Love Supreme」은 그 표현이 적확히 들어맞는 앨범이다. 스스로의 종교적 체험을 즉흥연주의 양식을 빌어 서사시로 표현해낸 이 앨범은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보편적인 대중적 공감을 전달한다. 이 대작은 두차례의 라이브 연주가 있었던 것으로 회자되는데, 최근 2021년 가을 발표된 「A Love Supreme : Live in Seattle」(2021)은 그 중 하나이다. 1965년 발표한 「A Love Supreme」을 전후로 콜트레인은 프리-재즈 운동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당시 파라오 샌더스, 아치 솁 등 급진적인 아방가르드 진영 연주자들과 협연을 벌이곤 했다. 「Live in Seattle」(1965), 「New Wave in Jazz」(1965), 「Meditation」(1965) 등이 그 결과물이다. 이 앨범들에서 콜트레인은 극단적인 기교를 발라드를 통해 승화시킨 「Crescent」로 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추상적인 격정을 쏟아내는 즉흥연주를 들려준다. 당시 라이브 공연평들을 되집어 살펴보면, 콜트레인은 심지어 색소폰을 내려 놓고 가슴을 치며 고함이나 비명을 지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연주자로서 기교를 넘어서서 보다 직접적이고 원초적인 표현을 갈구하는 그의 예술혼을 말해주는 사례이다. 이같은 원초적 표현에 대한 열정은 「Ascension」(1966)을 통해 보다 급진적으로 종합된다. 파라오 샌더스, 아치 솁을 포함한 세명의 테너 색소폰과 마리온 브라운, 존 치카이 두명의 알토 색소폰, 프레디 허바드, 듀이 존슨 두명의 트럼펫, 지미 개리슨과 아트 데이비스 두명의 베이시스트, 피아노 맥코이 타이너, 드럼 엘빈 존스의 10중주단 편성 앨범이다. 하나의 주제를 다수의 연주자가 각자 개성이 깃든 즉흥연주로 전달하며 다소 혼란스럽게 시작한다. 이후 연주가 잦아들며 조심스럽게 주제가 정리되는 가운데 피아노, 드럼이 표현하는 리듬섹션과 솔로이스트들이 교차하는 불협화음을 통하여 음향적 충격을 선사한다. 결국, 콜트레인 쿼텟은 「Ascension」을 뒤로하고, 급진적인 음악적 전회와 협주자의 급변에 부담을 느낀 기존 멤버들이 떠나며 와해되기에 이른다. 1960년대 중반 콜트레인은 사생활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변화를 맞이했다. 1963년 여름 첫 아내 나이마와 사실상 별거에 들어간다. 그리고 디트로이트 출신 피아니스트 앨리스 맥레오드(Alice McLeod)와 교제하며 동거에 들어간다. 1966년 나이마와 공식적으로 이혼하고 앨리스와 결혼하는데, 사실상 1964년 이후 콜트레인은 뉴욕 헌팅턴에 거처를 마련해 앨리스와 두 아들을 갖게 된 상황이었다. 앨리스는 피아노와 함께 하프와 오르간를 연주했으며, 힌두교나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녀의 이러한 배경은 콜트레인에게도 영향을 미쳐 함께 다양한 종교를 탐구하는 한편 아랍 및 인도, 아프리카 음악에 빠져들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앨리스 콜트레인은 맥코이 타이너가 떠난 콜트레인 밴드의 피아니스트 자리에서 남편의 곁을 지킨다. 결국, 존 콜트레인은 1967년 7월 17일 뉴욕에서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고통을 호소하다가 다소 이른 41세에 간암 판정 후 세상을 등진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신을 존경한 그를 사랑해 신께서 일찍 데려갔노라 믿고 싶다. 존과 앨리스 사이에는 3명의 아들이 있었다. 1964년생 첫째 주니어는 1982년 자동차 사고로 요절했다. 1965년생 둘째 라비는 본인의 쿼텟을 편성하여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한다. 1967년생 셋째 오란 역시 음악가로 활동했다. 아내 앨리스 콜트레인은 첫째 아들의 죽음 이후 활동을 자제했으나, 두 아들 라비, 오란과 함께 콜트레인 추모 공연을 열거나, 아들의 앨범 제작에 관여하기도 했다. 그녀는 2007년 호흡기 질환으로 69세에 숨을 거두어, 뉴욕 롱아일랜드의 남편 곁에 안장된다. 존 콜트레인은 부단히 음악을 연구하는 진지한 자세나 신을 향한 숭고한 태도 등을 통해 재즈계의 거인으로 존경받아 왔다. 사실, 그의 진지함과 숭고함이 형성된 행보는 길지 않다. 첫 리더작 「Coltrane」(1957)부터 세상을 떠난 1967년 여름까지는 10년에 불과하다. 청년 콜트레인은 비-밥 혁명에 자극받아 부단한 연습과 탐구를 통해 절정의 기교와 화성에 도달한다. 한때, 마약에 빠져 밴드에서 해고되기도 했으나, 신앙과 아내의 보살핌 속에 이를 극복하고 마일스 데이비스, 텔로니어스 몽크 등과 음악적 교감을 나누며 독창적인 표현양식을 추구한다. 결국, 30대 전후 여러 화음을 끌어안은 빠른 선율로 다층적인 음향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Sheets of Sound(소리의 융단)'를 구현하고, 복잡한 코드진행을 넘어 모드기법을 아우르기에 이른다. 그러나 콜트레인은 표현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았다. 신생 레이블 임펄스의 지원 위에 발라드를 매개로 즉흥연주를 확장하는 프리-재즈로 나아간다. 그리고 자신을 구원으로 이끈 신앙 안에서 재즈를 뛰어 넘는다. 거인 콜트레인의 행보는 안타깝게도 짧았으나, 재즈를 향한 그 열정은 뜨겁게 승화하여 재즈 너머 신의 곁에 이르렀을 것이라 스스로 위로해 본다. GreenT (음악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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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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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 고르기 +2 | 늘심심 | 23.11.0912:14 | 2.7만 |
DAC 고르기 +5 | 늘심심 | 23.11.0609:47 | 9072 |
오디오 시스템 테스트 / stereo test : speaker setup, calibration to... +2 | 늘심심 | 22.09.1114:08 | 7만 |
늘심심 | 24.09.1814:09 | 23 | |
늘심심 | 24.09.1713:22 | 37 | |
늘심심 | 24.09.1609:54 | 27 | |
늘심심 | 24.09.1115:18 | 23 | |
늘심심 | 24.09.1016:39 | 84 | |
늘심심 | 24.09.1015:06 | 28 | |
늘심심 | 24.09.0718:38 | 26 | |
늘심심 | 24.08.1316:01 | 59 | |
늘심심 | 24.09.0217:18 | 26 | |
늘심심 | 24.09.0115:35 | 97 | |
늘심심 | 24.08.3023:26 | 45 | |
Mactopia | 24.08.2911:51 | 113 | |
늘심심 | 24.08.2513:38 | 40 | |
늘심심 | 24.08.2118:02 | 40 | |
늘심심 | 24.08.1916:09 | 46 | |
믜늬의릐희 | 24.08.1217:50 | 130 | |
늘심심 | 24.08.1216:58 | 35 | |
늘심심 | 24.08.1200:40 | 102 | |
늘심심 | 24.08.1113:44 | 77 | |
Mactopia | 24.07.2311:44 | 55 | |
Mactopia | 24.07.1617:24 | 741 | |
잠퉁이 | 24.07.1606:08 | 865 | |
늘심심 | 24.07.1616:07 | 826 | |
늘심심 | 24.07.1517:29 | 865 | |
늘심심 | 24.07.1411:42 | 1087 | |
늘심심 | 24.07.1407:55 | 1015 | |
늘심심 | 24.07.1216:15 | 1392 | |
Mactopia | 24.07.1123:43 | 1504 | |
늘심심 | 24.07.1109:53 | 1565 | |
늘심심 | 24.07.1109:39 | 2145 | |
늘심심 | 24.07.1009:49 | 2164 | |
늘심심 | 24.07.1009:29 | 1478 | |
늘심심 | 24.07.0911:37 | 2235 | |
늘심심 | 24.07.0723:54 | 1404 | |
늘심심 | 24.07.0723:44 | 1384 | |
늘심심 | 24.07.0723:33 | 2042 | |
늘심심 | 24.07.0611:15 | 1150 | |
늘심심 | 24.07.0318:31 | 1353 | |
늘심심 | 24.07.0310:11 | 1064 | |
늘심심 | 24.07.0212:09 | 1064 | |
늘심심 | 24.07.0113:37 | 1009 | |
늘심심 | 24.06.3012:52 | 1024 | |
늘심심 | 24.06.2922:09 | 922 | |
늘심심 | 24.06.2817:14 | 869 | |
moongate | 24.06.2722:29 | 899 | |
늘심심 | 24.06.2710:33 | 826 | |
늘심심 | 24.06.2609:13 | 791 | |
늘심심 | 24.06.2412:25 | 713 | |
늘심심 | 24.06.2412:10 | 678 | |
Stultus | 24.06.2323:37 | 2631 | |
Stultus | 24.06.2219:25 | 672 | |
늘심심 | 24.06.2211:23 | 598 | |
늘심심 | 24.06.2211:14 | 587 | |
moongate | 24.06.2111:32 | 687 | |
Mactopia | 24.06.1923:11 | 591 | |
moongate | 24.06.1814:13 | 662 | |
늘심심 | 24.06.1719:34 | 567 | |
늘심심 | 24.06.1719:32 | 545 | |
늘심심 | 24.06.1510:40 | 605 | |
늘심심 | 24.06.1413:16 | 496 | |
늘심심 | 24.06.1413:04 | 498 | |
moongate | 24.06.1315:20 | 596 | |
moongate | 24.06.1216:56 | 511 | |
늘심심 | 24.06.1213:52 | 490 | |
늘심심 | 24.06.1213:48 | 488 | |
늘심심 | 24.06.1212:40 | 557 | |
Stultus | 24.06.1121:28 | 493 | |
Stultus | 24.06.1120:59 | 494 | |
SystemShock | 24.06.1013:29 | 533 | |
늘심심 | 24.06.1012:03 | 465 | |
늘심심 | 24.06.1011:57 | 459 | |
SystemShock | 24.06.0816:12 | 582 | |
늘심심 | 24.06.0813:31 | 486 | |
늘심심 | 24.06.0812:05 | 501 | |
늘심심 | 24.06.0709:33 | 457 | |
늘심심 | 24.06.0709:29 | 454 | |
늘심심 | 24.06.0511:34 | 453 | |
늘심심 | 24.06.0511:25 | 453 | |
늘심심 | 24.06.0308:43 | 457 | |
늘심심 | 24.06.0308:33 | 4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