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태, 떠나야 할 때를 모르는
'민주당 원로'의 긴 그림자
-시민언론 민들레/김호경-
참여정부 초기의 중요한 시기에 정무수석을 맡았지만 청와대와 여야 사이의 가교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 것도 아니어서 당시 의원들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의도에 잘 나타나지도 않아 민주당 신‧구주류를 막론하고 "정무수석이 뭐 하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을 제기하곤 했다. 2003년 7월 필자가 썼던 기사에는 당시 민주당 박상천 최고위원이 기자회견 도중 유인태 수석을 맹비난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XX는 신문도 안 보냐. 정무수석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당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보고도 안 받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데 어떻게 일이 풀리겠느냐.
'졸음'으로 유명했던 전무후무한 정치인…3선 뒤 '컷오프' 퇴장
청와대 수석이나 국회의원으로서의 활약상 대신 그는 '졸음'으로 유명했다. 정치인으로서는 극히 불명예스러운 '졸기의 달인' '잠신' 등의 별명을 동반한 채 청와대와 국회 회의 중에 그가 얼마나 졸았는지에 관한 기사가 허다하게 쏟아졌다. 심지어 정무수석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그를 향해 "유 수석은 눈을 감으나 뜨나 똑같잖아요" "세상에는 눈을 뜨고 살다가 가끔 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고 살다가 가끔 뜨는 사람도 있다" 등의 뼈 있는 농담을 건넸고, 부인 권양숙 여사는 "눈이 피곤하신 모양인데 손을 비빈 뒤 뜨거운 손바닥을 눈에 대면 피로가 풀린다"고 말할 정도였다.
참여정부 초대 내각을 발표할 때도 졸았고, 노 대통령 앞에서 졸다가 코 고는 소리를 낸 적도 있다고 한다. 본인이 직접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밥 먹다가도 잔 적이 있다. 노 대통령, 총리 등 다섯 명이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제어가 안 될 만큼 졸리는 거였다. 허벅지를 꼬집다가 못 견뎌서 졸았다"라고 무용담처럼 털어놓기도 했다. 흔히 '엽기 수석'으로 불리던 이 시절 유 전 총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기자들이 '왜 그리 조느냐'는 질문을 필수 항목처럼 꺼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정치부 기자 출신인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2020년 5월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은 졸지 않은 모습을 거의 본 기억이 없다"며 "국정감사, 국회 상임위 때도 늘 눈을 감고 계셨다"고 회상했다.
'조는 정치인'으로서는 가히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였지만 의정활동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그는 2016년 3월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의 현역 의원 평가 결과 하위 20%(컷오프 대상)에 포함됐다. 3선 의원이었던 그는 입장문을 내고 "저의 물러남이 당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라며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평소 삶에서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해왔다"며 "그러나 당이 탈당 등 워낙 어려운 일을 겪다 보니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미뤄왔던 것이 오늘에 이른 것 같다. 다 저의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성을 표시했다. 하지만 2018년 7월 문희상 국회의장이 취임하면서 장관급인 사무총장으로 다시 국회에 복귀했고 2년 임기를 다 채웠다.
정치 평론가 변신…'민주당 원로'의 민주당 비난에 언론 반색
이처럼 현직 땐 국민들에게 별 존재감을 주지 못한 채 자주 졸던 그가 뒤늦게 방송 활동의 재미에 눈을 떴는지 언젠가부터 정치 평론가로 변신해 다변을 과시하고 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는 '월간 유인태'라는 코너까지 마련돼 고정 출연하고 있고, 그밖에 다양한 방송에 등장해 정치 현안에 대한 견해를 활발하게 표명하는 중이다.
또 한 명의 '정치 9단'급 원로로서 대통령실과 여야를 망라한 전천후 해설을 내놓고 있는데, 특히 친정인 민주당에 대해 그 어떤 패널 못지않게 거침없는 독설을 내뱉다 보니 언론에서는 반색을 하면서 무수히 받아쓰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권을 비난하는 데 더없이 좋은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언론사 입장에서 보수우파 측 패널보다 '민주당 원로'의 쓴소리가 훨씬 독자들 눈길을 끌고 '클릭 수'를 높이는 데 효과적임은 물론이다. 그런 속성을 모를 리 없는 유 전 총장이 언론 입맛에 맞게 먹잇감을 주는 방식은 이런 것이다.
유 전 총장이 지난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분통을 터뜨리며 이어간 발언이다. 민주당 관계자나 당원들이 보기엔 '아무말 대잔치'에 가까운 주장인데 언론에서는 다수의 기사와 사설, 칼럼을 통해 이를 적극 활용했다.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민주당 중진·원로들은 할 말은 하고 있다"며 유 전 총장의 해당 발언을 '이재명당' 비판의 주요 근거로 내세운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친윤어용 신문의 이 같은 상찬과는 달리 유 전 총장의 이번 인터뷰에는 평소 그의 정치 평론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집약돼 있다.
정당 민주주의 시스템과 '당원 주권'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착오
이재명을 '이승만' '황제'로 인식…민주당 '탈당파' 시각과 동일
사실관계 확인에 게으르고 무책임…의혹 단정해 섣불리 매도
조국 '사모펀드', 추미애 '아들 황제 휴가', 송영길 '돈봉투' 등
"구속이 되면 어때요. 그 정도의 모험도 안 하고 자꾸 거저먹으려고 세상을 그러면 되나요. 만약에 구속이 되면 권력이 무모하다고 그러지 당당하게 가서 된들. (진행자가 '이 대표가 구속기소 된다면 당은 대표 없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그런 일이 생기면 거기에 따라 대응을 하겠죠. 지금 정치가 잘못돼서 저렇게 사람이 없다고 그러지 어느 당이고 인재들은 많은 거예요." (2023.2.23.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이재명 대표가 자꾸 오랑캐 쳐들어온다고 그러고 자기는 그렇게 무죄라고 하는데 그러면 한번 영장실질심사를 받아보는 게 (좋지), 그러지 않고 리더십이 생기겠냐, 이런 고민들을 하는 의원들이 좀 있더라고요. 생각보다 그 숫자가 꽤 될 겁니다. 이재명 대표가 지금의 스탠스로 총선까지 임할 수 있겠느냐. 여기에 대해서 좀 회의적으로 보는 의원들 숫자는 꽤 된다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 대표직도 유지하고 계속 방탄을 하면서 또 재판정에 출석하면서 저렇게 당을 끌고 가서 과연 총선에 무슨. 문재인 대통령도 강성 지지층을 양념이라고 한 게 큰 실수이듯이 지금 저런 데 끌려다녀가지고는 별로 희망이 안 보이는 거죠." (2023.3.7.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본인 말대로
"유인태의 시대는 갔다…물러날 때 아는 게 소중"
유 전 총장은 현역 시절 "유인태의 시대는 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2004년부터 이미 "내 시대는 간 것 같다"고 공개적으로 피력했고, 그래서 일찌감치 정계 은퇴를 하려다 열린우리당 요청으로 총선에 나가 재선 의원이 된 바 있다. 3선까지 한 뒤 자의반 타의반으로 "평소 삶에서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해왔다"며 정계 은퇴를 공식 선언했지만, 미련이 남았는지 나이 70대에 국회 사무총장을 지내더니 이후엔 정치 평론가로서 현역 때보다 더 자주 언론에 등장하는 중이다. 본인의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나갔는데 정치권 주변을 너무 오래 맴도는 것이 아닐까. 근래에 스스로도 절감하고 있는 바를 이제 실천할 때가 된 것 같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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